"이제는 무서워서 선뜻 선택하기 힘들어요."
기획기사 ‘서민 주거가 무너진다’를 준비하면서 만난 사회 초년생들은 빌라(연립·다세대주택) 전세의 이미지를 묻는 물음에 하나같이 이처럼 답했다. 지난해부터 수면 위로 드러난 전세사기 여파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고, 최근에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셋값이 하락하면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역전세 문제도 심각하기 때문이다. 악착같이 모았던 보증금을 한순간에 다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사느니 차라리 속 편하게 월세를 선택하는 편이 낫겠다는 것이다.
관악구 신림동 한 빌라에서 사는 김호윤 씨(27)는 “전세는 월세보다 비교적 낮은 금액으로 주거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만 생각해왔다”며 “최근 전세 관련 일련의 사건들로 안일했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김 씨 말처럼 그간 전세, 그중에서도 빌라 전세는 사회초년생들에게는 향후 ‘내집 마련’에 쓸 목돈을 마련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단계로 꼽혔다. 최근 전세로 옮긴 기자 역시 똑같이 생각했다. 서울에서 비싼 월세를 내는 것보다 전세자금 대출 이자를 내는 것이 주거비에서 절반가량 절약됐다.
그러나 사회초년생들에게 주거 사다리였던 빌라와 전세시장이 무너지면서 내집 마련의 꿈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 서울 빌라 전세 거래량은 총 3만2547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세사기 문제가 본격화되기 전인 전년도 같은 기간(4만8718건)과 비교하면 약 33% 급감한 수치다.
정부는 최근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세입자 보호조치를 전제로 1년 한시로 임대인에게 보증금 반환목적 대출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주기로 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실효성 없는 임시방편 정책에 불과하고, 오히려 무리하게 갭투자한 임대인을 구제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단순히 급한 불을 끄는 정책이 아닌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전세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주택별로 적절한 보증금 상한선 기준을 마련하거나 일부 보증금에 대해서는 향후 안전하게 보장받을 수 있도록 예치하는 에스크로 제도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무너진 서민 주거 사다리, 이제는 다시 탄탄히 세워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