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사업 백지화 선언도 가벼워
정치염증 느끼는 국민 생각하길
지난 주 후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한마디가 온 나라를 들끓게 만들었다. 더불어민주당이 제기한 김건희 여사 일가의 ‘서울~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이 계속되자 사업 전면 백지화를 선언한 것이다. 원 장관은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긴급 당정협의회 직후 가진 브리핑에서 “국토부 장관으로서 정부의 의사결정권자로서 말한다”며 “서울~양평고속도로에 대해서는 노선 검토뿐만 아니라 도로 개설 사업 추진 자체를 이 시점에서 전면 중단하고, 이 정부에서 추진된 모든 사항을 백지화할 것”이라고 전격 발표했다.
이 발언으로 양평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국민들까지 서울~양평고속도로의 노선을 알게 됐고 이 지역이 고속도로가 꼭 필요한 곳이라는 사실 역시 알게 됐다.
하지만 원 장관의 발언처럼 ‘국토부 장관이자 정부의 의사결정권자’라면 저렇게 말 한마디로 진행 중인 국책 사업을 뒤집어서는 안된다. 이 사업은 6번 국도의 극심한 교통 정체 해소를 위해 지난 2008년부터 주민들이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대부분의 국책 사업이 그렇듯이 우여곡절 끝에 2017년 가까스로 제1차 고속도로 건설계획에 포함되면서 사업이 본격화됐다. 2년 전에는 예타를 통과하며 주민들의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 큰 상황이었다.
원 장관의 발언 이후 말 그대로 여론이 들끓었고, 이에 원 장관은 한 방송에 나와 “(민주당이) 사과와 문책을 전제로 한다면 그때 가서 저희들이 같이 머리를 맞대보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국민을 우습게 보는 것이 아니라면 혈세가 들어가는 국책 사업을 이렇게 하루사이에 몇 마디 말로 들었다 놨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제기에 나선 더불어민주당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통상 국책사업은 예타가 통과된 이후에도 효율성과 사업 비용 등을 감안해 수차례 수정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그들이 모를 리 없다. 더군다나 국토부뿐만 아니라 서울시, 하남시, 광주시, 양평군 등 많은 지자체가 얽힌 사업에서 국토부 등 특정 기관이 특정인을 위해서 일방적으로 노선을 바꾸는 게 사실상 불가능 하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민주당이 근본적인 이권으로 지목한 김 여사 일가의 특혜 역시 국민의힘과 양평군 등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이들이 보유한 부지는 고속도로와 고속도로가 만나는 JCT 인근이다. 차량이 드나드는 나들목(IC)이라면 모를까 JCT가 지나가면 이 땅은 맹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단군 이래 최악의 이권 카르텔”이란 묻지마식 공격엔 민주당의 기저에 ‘아니면 말고’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더 화가 나는 것은 국책 사업을 카르텔로 규정하며 묻지마식 공격을 퍼부은 ‘더불어민주당’이나 이를 빌미로 한마디 말로 뒤집어 버린 ‘원희룡 장관’ 모두 자신의 발언으로 책임을 지거나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사업이 지연되는 데 들어간 비용만큼 물어내야 한다거나 합당한 처벌을 받게된다고 생각했으면 과연 이들이 이처럼 막무가내식 행태를 보였을지 의문이다.
객관적 사실은 사업지 일대가 주말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상습 정체지역이라는 점이다. 고속도로가 생기면 일대는 물론 수도권 주민에게도 도움이 되고, 이는 사회적 손실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국민들이 정치에 혐오와 염증을 느끼는 것이 이처럼 책임감 없는 ‘입’ 때문이다. 국민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정치인과 야당이 지금처럼 행동할 순 없을 것이다.
우리 헌법 제2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자유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영향력이 큰 정치인, 그리고 정당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