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꽃의 다큐버스] “아, 그 음악!” 영화보다 유명한 주제곡 남긴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입력 2023-07-13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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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스틸컷. 젊은 시절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엔니오 모리꼬네가 주제곡을 쓴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석양의 건맨'(1967) 출연한 모습. ( ㈜영화사 진진)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스틸컷. 젊은 시절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엔니오 모리꼬네가 주제곡을 쓴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석양의 건맨'(1967) 출연한 모습. ( ㈜영화사 진진)
황야에서 들려오는 휘파람 가락이 귓가를 세게 때린다. 이름 없는 총잡이의 등장에, 마을을 선점한 카우보이들 얼굴에 묘한 긴장이 서리는 대목이다.

서부극 갈래를 타고 나온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의 대표작 ‘황야의 무법자’(1966)는 엔리오 모리꼬네가 휘파람 소리를 활용해 쓴 주제곡으로 한층 입소문을 탄다. 같은 감독의 석양의 무법자’(1969)에서 공개한 ‘The Ecstasy of Gold’는 영화보다 더 유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요테 울음소리에서 연상한 도입부 “빠이야이야~”는 요즘 관객에게도 익숙할 정도다.

모두 이탈리아 영화음악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1946~2020) 손끝에서 완성된 곡들이다. 5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는 1960년대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 음악을 시작으로 ‘시네마 천국’(1990), ‘미션’(1986),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 등 누군가의 ‘인생 영화’로 손꼽힐 만한 수작의 주제곡을 쓴 대가의 영화음악 여정을 망라한다.

▲전 세계 7000만 장 이상의 음반을 판매한 영화음악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의 생전 모습.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무법자' 등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와 '시네마 천국', '미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등 길이 남을 명작의 주제곡을 썼다. ( ㈜영화사 진진)
▲전 세계 7000만 장 이상의 음반을 판매한 영화음악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의 생전 모습.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무법자' 등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와 '시네마 천국', '미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등 길이 남을 명작의 주제곡을 썼다. ( ㈜영화사 진진)

구성은 비교적 단순한데, 감흥은 남다르다. 장르도 악기도 가리지 않았던 엔니오 모리꼬네의 과감하고 실험적인 작업물을 액기스처럼 뽑아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한 편의 ‘영화음악 지식백과’를 접하듯 알차고 황홀하다. 전 세계에서 음반 7,000만 장을 넘게 팔아치운 대가의 작업물답다.

할리우드의 개성파 장르영화 대표주자로 손꼽히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영화음악계의 관심을 독차지 중인 한스 짐머 음악감독이 줄줄이 찬사의 인터뷰에 응하는 가운데 영화인들의 영화인인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도 한마디 말을 보탠다.

“당시만해도 서부극에서 그런 장엄한 곡은 안 썼어요. 음악 덕에 내 캐릭터의 서사가 부각됐죠.”

젊은 시절 ‘황야의 무법자’와 ‘석양의 무법자’ 주연 배우로 얼굴을 알린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전자기타음에 채찍소리, 피리부는 소리, 모루 치는 소리 등을 접목한 엔니오 모리꼬네의 용감한 작법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고 증언한다.

▲엔니오 모리꼬네가 주제곡을 쓴 영화 '시네마 천국'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엔니오 모리꼬네가 주제곡을 쓴 영화 '시네마 천국'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귀에 익은 음악이 터진 둑의 물줄기처럼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건 작품의 큰 미덕이다. 국내에 ‘넬라 판타지아’로 잘 알려진 ‘가브리엘의 오보에(Gabriel's Oboe)’가 등장할 때가 특히 그렇다. 엔니오 모리꼬네가 롤랑 조페 감독의 대표작 ‘미션’의 주제곡으로 쓴 곡이다. 위기에 처한 선교사가 오보에의 아름다운 선율로 남미 원주민의 마음을 얻는 핵심 장면에 등장해 감정의 설득을 더한다.

떠나는 기차를 바라보는 로버트 드 니로의 먹먹한 표정이 압권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도 ‘데보라의 테마(Deborah's Theme)’ 없이는 완성될 수 없었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은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하는 촬영장에 이 애절한 곡을 줄곧 틀어놨을 정도라고 한다.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스틸컷. ( ㈜영화사 진진)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스틸컷. ( ㈜영화사 진진)

작품이 각별한 데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30년 영화 절친’인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기 때문이다. ‘시네마 천국’으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피아니스트의 전설’(1998) 등 걸작의 영화음악 작업을 함께했다.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회고에 따르면 엔니오 모리꼬네는 자신의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는 제작자에게 “쥬세페가 감독이라면 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안 하겠다”고 잘라 말했다고 한다.

덕분에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시계태엽 오렌지’(1971) 작업이 불발된 ‘사건’ 등 그간 세간에 공개되지 않았던 흥미로운 뒷이야기도 전해질 수 있었다.

엔니오 모리꼬네는 2020년 유명을 달리했지만, 그의 삶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이의 정성스러운 인터뷰와 자료 정리 덕에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라는 영원한 기록으로 세상에 남게 됐다. 쥬세페 트로나토레 감독은 최근 국내 배급사와의 인터뷰에서 그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영화에서 현재 그가 물리적으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어요. 항상 현존하는 엔니오로서 이야기하고 싶었죠. 그의 음악이 항상 현존하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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