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로] 英 대처는 왜 노조특권을 박탈했나

입력 2023-07-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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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제받지 않는 세력, 파업 일삼아
고비용 저효율로 ‘영국병’ 불러와
한국도 철지난 노란봉투법 버려야

노동조합의 불법파업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 이른바 ‘노란봉투법’을 가장 먼저 시행한 나라는 영국이다. 영국의 노란봉투법 도입 역사는 오래 됐다. 노사 간 힘의 균형이 사용자에게 완전히 기울어져있던 시절인 1906년 노동쟁의법을 제정하면서 노조 파업에 따른 피해 발생 시 노동조합 및 노조간부들은 소송대상에서 제외시키는 조항을 담았다. 이는 당시 사용자가 근로자에 비해 월등한 교섭력을 갖고 있었기에 노사 간 무기대등 원칙 차원에서 노동자의 교섭력을 높여주기 위한 정부의 배려였다.

다른 유럽 국가들은 단결권 단체행동권 단체교섭권 등 노동3권을 헌법이나 법률로 보장하면서 기울어진 노사 간 힘의 균형을 맞추는 노력을 나름대로 했다. 그런데 영국은 전통적으로 노사자치주의 원칙을 견지하고 있었기에 노동3권을 헌법이나 법률에서 보장하지 않았다. 노사자치주의에 따라 노동자는 자유롭게 노조를 결성할 수 있었고 사용자들은 노조에 가입한 노조원들을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었다. 노조의 힘이 사용자한테 한참 밀리던 시절 노동3권을 법으로 보장받지 못한 탓에 노조는 사용자의 압박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영국 정부는 노동3권을 법으로 인정하지 않는 대신 불법파업에 대해 면책특권을 부여함으로써 노동기본권을 간접적으로 인정했다. 이것이 전 세계 노동운동사에 처음 등장한 노조의 면책특권이다. 이 조항에는 노조간부나 노동조합이 노사분규를 진행시키기 위해 취한 행동에 법적 책임이 면제된다고 규정돼 있고 어떤 불법행위도 소송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노조를 아무 견제받지 않는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만든 것이다.

이 조항은 노조가 힘을 남용하는 무책임한 독점집단으로 커가는 데 일조했다. 노사 간 힘의 균형은 일찌감치 무너졌고 노조는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며 거대한 공룡으로 변해갔다. 노조의 파워가 한창 위세를 떨쳤던 1970년대에는 한 해 파업건수가 2000건을 넘기기 일쑤였다. 노조권력이 산업현장을 장악하면서 영국 경제는 크게 병들어갔고 1976년에는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다. 1979년 봄 실시한 총선에서 국민들은 노조 우군인 노동당 대신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철의 여인’ 대처는 영국 총리에 부임하자마자 ‘고비용 저효율’의 영국병 치료에 착수했다.

노동개혁과 규제완화로 대변되는 ‘대처리즘’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개혁정책들의 집합이었다. 우선 영국병의 주요 요인이었던 노조권력 무력화정책을 펼쳤다. 파업 찬반투표에서 승인을 받은 파업에 대해서만 면책특권을 인정하고 2차 파업을 주도한 조합간부의 면책특권은 박탈했다. 또 사용자는 손해배상의 대상이 되는 파업을 벌인 노조에 대해 파업중지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불법파업, 동정파업, 정치파업에 대한 노조의 면책특권을 없앤 것이다. 대처의 노동개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파업에 참가한 근로자를 선별적으로 해고할 수 있는 권한을 사용자에게 부여했고 노조권력의 핵심 원천인 클로즈드숍제도를 폐지해 버렸다. 대처의 개혁 이후 외국 자본의 유입과 일자리가 크게 늘어나는 등 영국 경제는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40여 년 전 영국 경제를 망친 주범으로 지목돼 대처 개혁의 핵심 대상이었던 노조의 면책특권이 더불어민주당의 ‘정치적 무기’로 동원되고 있다. 노조의 불법파업을 조장하는 부작용 때문에 선진국에서 오래전 사라진 노란봉투법을 우리나라 거대 야당이 온갖 이유를 내세우며 입법화를 추진 중이다. 하지만 이는 노동세력의 지지를 겨냥한 포퓰리즘과 윤석열 정부의 입지를 뒤흔들려는 어처구니없는 정치적 술수에 다름아니다.

노사 관련 전문지식도 없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노란봉투법 도입을 권고한 것은 블랙코미디를 연상케 한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뜬금없는 결정이다. 인권위는 “쟁의행위로 인한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 및 가압류가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을 위축시키고, 근로자와 가족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며 권고 배경을 설명했다.

노조의 불법파업이 판치는 상황에서 노란봉투법의 부작용을 외면한 채 노동기본권만 강조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90여 개 노동·시민사회단체에 국가인권위까지 스크럼을 짜고 철지난 노조의 면책특권을 입법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런 나라에서 노동개혁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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