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여 간 정부가 비용을 전액 부담하는 인플루엔자 등 국가예방접종사업 대상 백신 구매 입찰에서 사전에 낙찰사를 정하는 등 담합을 한 녹십자 등 32개 업체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러한 부당 공동행위로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32개 백신 관련 사업자에 대해 시정명령 및 과징금 총 409억 원을 부과한다고 20일 밝혔다.
32곳은 백신제조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과 백신총판(백신제조사와 판매계약 체결)인 광동제약, 녹십자, 보령바이오파마, SK디스커버리, 유한양행, 한국백신판매 등이다. 나머지 25곳은 의약품도매상(백신 유통)이다.
이번 담합 대상인 백신은 모두 정부가 비용을 부담하는 국가예방접종사업 대상 백신으로, 인플루엔자 백신, 간염 백신, 결핵 백신, 자궁경부암 백신, 급성중이염, 폐렴구균 백신 등 총 24개 종목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32개 업체는 2013년 2월~2019년 10월 조달청이 발주한 170개 입찰에서 사전에 낙찰예정자를 정하고 들러리를 섭외한 후 투찰가격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담합했다.
초기에는 의약품 도매상끼리 담합했으나 정부가 2016년부터 제3자 단가 계약 방식(정부가 전체 물량의 5∼10% 정도인 보건소 물량만 구매)을 정부 총량 구매 방식(정부가 연간 백신 물량 전부 구매)으로 바꾸자 글로벌 제약사가 직접 들러리를 섭외하고 백신 총판이 낙찰받았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백신 입찰 시장 내 담합 관행이 워낙 고착화·만연화한 탓에 전화 한 통만으로 들러리를 섭외할 수 있었고, 들러리 사는 입찰 가격을 사전에 일러주지 않아도 알아서 적당히 높은 가격을 써내 역할을 수행했다"고 설명했다.
담합 결과 이들 업체는 유찰되거나 제3의 업체가 낙찰된 23건을 제외하고 147건을 계획대로 낙찰받았다. 이 중 117건(80%)은 낙찰률(기초금액 대비 낙찰금액 비율)이 100% 이상이었다. 입찰 담합을 통해 더 비싼 값에 정부에 백신을 팔았다는 애기다. 담합이 이뤄진 170건 입찰의 관련 매출액은 7000억 원에 달한다.
특히 백신총판인 녹십자, 보령바이오파마, SK디스커버리 등 3곳은 2011년 인플루엔자 백신 담합으로 제재를 받았음에도 이 사건의 담합에 참여한 것으로 조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