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이? 씨알도 안 먹혀”…훈육과 학대 사이, 선생님은 길을 잃었다 [이슈크래커]

입력 2023-07-21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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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서울 서초구 강남서초교육지원청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한 시민이 추모 쪽지를 붙이고 있다. (뉴시스)
▲21일 서울 서초구 강남서초교육지원청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한 시민이 추모 쪽지를 붙이고 있다. (뉴시스)
최근 서울 양천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학생에게 폭행당한 데 이어 서초구에선 초등학교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교육계에선 ‘교권 붕괴 수준이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30일 양천구의 한 초등학교에선 6학년 담임교사 A 씨가 교실에서 학생에게 폭행당해 전치 3주 상해와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진단을 받았습니다. 수업 참여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학생에게 욕설, 얼굴과 몸을 향한 주먹질과 발길질 등 폭행을 수십 차례 당했다고 하는데요.

A 교사의 남편은 “(학생의) 부모에게 전화했지만, 미안하다 괜찮으시냐는 말 한마디 없었다”며 “‘우리 애가 소리에 민감하다. 혹시 싸움을 말리려다 그런 건 아니냐’라는 별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했다”고 울분을 토했습니다. 논란이 확산하자 해당 학생의 부모는 19일 SBS에 “A 씨에게 용서를 빌고 싶다”며 “학생 역시 반성하고 있다”고 알려왔다고 합니다.

이달 18일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해당 학교 1학년 담임교사 B 씨가 숨진 채 발견돼 충격을 안겼습니다. A 씨는 지난해 발령받은 2년 차 새내기 교사였죠.

경찰은 정확한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수사 중에 있는데요. 온라인상에서는 B 교사가 학급 학생들의 다툼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학부모 민원에 시달리는 등 이른바 ‘학부모 갑질’이 사망의 원인이 됐을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이후 온라인상엔 그간 학교 현장에서 일부 학생·학부모의 비상식적 행동을 경험한 교사들의 고발이 이어졌습니다. 언론에 알려진 사례 외에도 학부모의 욕설과 폭언, 악성 민원, 악의적인 아동학대 신고 등에 시달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는 겁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학생 훈육이 불가능한 학교 현장…“아동학대 신고 우려”

9일 직장인 온라인 커뮤니티엔 “담임한테 막말하는 초등 6학년 대처법 좀 알려달라”는 제목의 글이 게재됐습니다. 글쓴이는 자기 여자친구가 초등학교 6학년 담임교사라며, 반 학생 중 비상식적인 언행을 하는 아이가 있어 고민이라고 전했는데요.

글쓴이는 “예전에도 (학생이) 교실에서 ‘선생님은 남자만 잘 꼬시죠’라는 발언을 해서 여자친구가 주의를 준 적이 있는데, 오늘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며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사진은 학생이 교사에게 보낸 메시지를 캡처한 것으로, “야 이 XX야 뜨거운 밤 보내”라는 비속어 섞인 글과 함께 욕설을 의미하는 이모티콘이 잔뜩 붙어 있습니다. 학생이 담임교사에게 보냈다고는 믿기 어려운 내용이었죠.

글쓴이는 “예전에 저희가 데이트하는 모습을 아이가 본 적 있는데 그 후로 저런 식의 언행을 한다”며 “학부모는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타일러달라고 하면 ‘네’ 한마디 하고 자기 아들 걱정으로 넘어간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는 대처법을 강구하면서도 아동학대 고발을 우려했죠.

교직 사회에서 교권 침해에 대한 지도와 대응은 소극적입니다. 앞선 글쓴이 사례처럼 보복성 아동학대 고발과 악의적 민원 신고 우려로 인한 교권 위축이라는 분석이 나오는데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지난해 9월 전국 유·초·중·고·특수학교에 근무하는 교사 624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92.9%는 아이들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아동학대로 의심받아 신고당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의 훈육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졌다는 걸 방증하는 셈입니다.

실제로 현행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교사는 아동학대로 신고만 당해도 사실관계를 떠나 곧바로 직위 해제됩니다. 지자체 조사에 경찰 조사까지 받고, 수업 배제, 담임 박탈, 출근 정지, 강제 휴가, 직위 해제 조치를 감수해야 하죠. 추후 경찰 조사 결과로 무혐의가 나오더라도 긴 시간이 소요되고, 명예 추락, 경제적 압박, 아동학대 낙인 등을 견뎌내야 하는 실정인 겁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에 아동학대로 고발된 사례를 살펴보면 △교사가 싸우는 아이를 말리다 세게 붙잡았다고 △교사가 대변 실수를 자주 하는 아이를 가정에서 더 잘 지도해달라고 요청했다고 △수업을 방해하고 교사에게 반말한 학생에게 다짐글을 쓰게 하고 상담받을 것을 권유했다고 아동학대로 고발된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 사건은 모두 무혐의 처분됐죠. 교사들 사이에서는 기분을 상하게 한 죄, ‘기분 상해죄’라는 자조 섞인 신조어가 나돌기도 합니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박사가 2022년 12월 13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저출산시대, 미래를 향한 열린 공감 컨퍼런스’ 명사 초청 강연에서 ‘함께하는 육아의 힘, 오픈 파트너십’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뉴시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박사가 2022년 12월 13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저출산시대, 미래를 향한 열린 공감 컨퍼런스’ 명사 초청 강연에서 ‘함께하는 육아의 힘, 오픈 파트너십’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뉴시스)
“상담 몇 번으론 씨알도 안 먹히는 아이 있어…‘금쪽이’는 환상”

교권 추락 관련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오은영 정신의학과 박사에게도 불똥이 튀었습니다. 육아 상담 예능 프로그램의 한계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 건데요. 여론이 ‘금쪽같은 내 새끼’ 등 다수의 방송에 출연하며 멘토 역할을 해온 오은영 박사에 대한 불만으로까지 이어진 겁니다.

일부 교사들은 오 박사의 ‘아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상처받지 않고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는 교육관엔 공감할 수 없다고 토로합니다. 교사 인권을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아이에 대한 존중과 공감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인데요. 한 누리꾼은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폭력은 없어야 한다’고 하는데, 체벌과 폭력을 같은 범주에 묶어 놓고 방송에서 주장하니 ‘금쪽이’ 같은 애들이 자꾸 출몰하는 것”이라며 “인간도 결국 동물이다. 말 안 들으면 따끔하게 혼내고 체벌도 해야 한다. 무자비한 폭력이 아니라 체벌 후에 아이를 위로해주고 공감해주면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선 말이 엇갈리는 모양샙니다. ‘아이를 향한 맹목적인 공감은 오히려 양육에 해가 된다’는 의견이 나오는가 하면, ‘오 박사는 체벌에 반대했을 뿐 훈육하지 말라고 한 게 아니다’라는 반박도 나왔죠.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인 서천석 서울대 의학 박사는 오 박사가 진행하고 있는 상담 방송을 작심 비판했습니다. 그는 19일 페이스북에 “무슨 상담 몇 차례나 교육 몇 차례? 바보나 얼뜨기 아마추어 아니면 그런 것으로는 씨알도 안 먹히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쯤은 다 안다”며 “‘금쪽이’ 류 프로그램들이 지닌 문제점은 방송에서 제시하는 그런 솔루션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사안에 대해서 해결 가능하다는 환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매우 심각해 보이는 아이의 문제도 몇 차례의 상담, 또는 한두 달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듯 꾸민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렇게 해결 못 하는 부모와 교사에게 책임이 갈 수밖에 없다”며 “노력해도 바꾸기 어려운 아이가 있고, 상당수는 장기간의 노력이 필요하며 그런 노력에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서 박사는 “그런 진실을 말해야 하는데도 프로그램은 흥행 내지 권위를 위해 의도적인지 아니면 은연중에 그러는지 환상을 유지하려 든다”고 덧붙였습니다.

▲21일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 추모 꽃다발이 놓여 있다. (뉴시스)
▲21일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 추모 꽃다발이 놓여 있다. (뉴시스)
교권 보호 노력 체감 안 된다는 지적도…관련 법·제도 정비 조속히 나서야

한국교총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간 학생이나 학부모에 의한 교원 폭행·상해는 1249건에 이릅니다. 이는 각 학교에 설치한 교권보호위원회에서 정식으로 심의 안건으로 올린 경우만 집계한 수치로, 학교 현장에서 실제로 발생한 교권 침해 사례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게 교육계의 설명이죠.

정부도 이 같은 문제로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노력을 체감하긴 쉽지 않습니다. 현재 국회 교육위원회에는 교권 보호를 위한 법안이 여럿 계류돼 있는데, 진전이 미미합니다.

21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과 정의당 정책위원회 등에 따르면 현재 교육활동 보호와 관련해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인 법안은 모두 8건으로 나타났는데요. 이 가운데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교원지위법) 개정안은 2021년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모두 5개의 개정안이 발의됐습니다. 시·도 교육청과 학교에 설치되는 교권보호위원회를 교육청 산하 교육지원청에도 설치하고, 학교장 판단에 따라 교권 침해 학생에게 우선 출석정지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 등을 포함하고 있죠.

문제는 이 개정안들이 심사 테이블에도 오르지 못했다는 겁니다. 2021년과 2022년 발의된 3건에 대해서만 지난해 11월에 교육위 법안심사소위에 상정돼 축조심사를 거쳤죠. 올해 상반기 발의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2건과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 개정안 역시 아직 상임위에 상정되지 않았습니다. 교원의 생활지도 권한을 명시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만 지난해 개정돼 지난달 시행된 상황입니다. 관련 법 심사부터가 활발히 진행되지 않으면서 국회 문턱을 못 넘는 겁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0일 경기도교육청에서 열린 전국 시도교육감 간담회에서 “교사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에 대해 심각한 교권 침해가 원인이 됐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데 사실이라면 교육계에 중대한 도전”이라며 “교권을 확립하고 교원의 정당한 교육활동이 법적으로 충분히 보장돼 균형 잡힌 교육 현장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날 모인 교육감들에겐 “국회에서도 선생님들의 정당한 교육 활동을 보다 확고하게 보호하기 위한 법안이 논의 중이다. 교육부와 함께 교육감님들께서 조속한 법안 통과를 위해 뜻을 모아달라”고 당부했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최근 교사 폭행 사안 등 심각한 수업 방해, 교육활동 침해가 벌어지고 있고 학교폭력 관련 학생에 대한 교원의 생활지도를 무력화하는 악의적인 민원과 고소가 급증하고 있다”며 “교권을 바로 세우기 위한 특단의 대책 마련을 위해 교육부, 국회 교육위원회와 함께 법적, 제도적 정비를 위한 테이블을 만들어 구체적인 진전이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교원단체에서는 교육 당국의 이 같은 대처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셈’이라며 보다 강경한 조치에 나설 것을 촉구했습니다. 특히 무분별한 민원, 아동학대 고발 등을 제어하고 교사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정당한 생활지도가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달라는 겁니다.

한국교총은 서울시교육청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개혁의 시작은 교권이 확립될 때 가능하다”며 “왜곡된 인권 의식과 학생인권조례에 따른 교실 붕괴와 교권 추락 현실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미 추락할 대로 추락한 교권으로, 교육당국의 대처 역시 ‘사후약방문’ 식이라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 보이는데요 . 우선 교권 회복을 위한 종합 대책을 논의할 자리가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앱,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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