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정권이 안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설움 담긴 공무원의 한마디 [공무원 수난시대]

입력 2023-07-24 05:00 수정 2023-07-24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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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2023-07-23 17:00)에 Channel5를 통해 소개 되었습니다.

원전→탈원전→탈탈원전→그 다음은?…가치관·정체성 혼란
희생양 산업부 공무원 옷 벗고 퇴직…박탈감 느끼는 동료들 “마음 놓고 일 하겠나?”
전문가 “정권에 따라 에너지 정책 바뀔 수 있어, 다만 공무원 적폐로 모는 건 옳지 않아”

▲정부세종청사전경 (사진제공=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정부세종청사전경 (사진제공=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차라리 정권이 안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낮은 탄식과 함께 내뱉은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의 말에서는 푸념으로 치부할 수 없는 설움이 느껴졌다. 문재인 전 대통령 정부의 더불어민주당이 정권을 유지했어야 한단 뜻도, 현 윤석열 정부를 탄생시킨 국민의힘이 다음 정권을 이어가길 바란다는 의미도 아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양극단으로 치닫는 에너지 정책과 그 정책을 추진하는 공무원이 법정에 서야 하는 상황에 대한 회의와 박탈감 등에서 나온 발언이다.

에너지 정책이 정치화·정쟁화 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에너지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산업부 공무원들은 이전 에너지 정책을 부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가치관과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다. 적폐로 몰려 옷을 벗기도 한다. 에너지 정책에 경험이 있는 한 공무원은 “기저발전원으로 중요했던 원전은 문재인 정부에서 탈원전으로 돌아섰다. 지난 정부 태양광은 클린 에너지로 기술 개발을 통해 효율을 올리면 상당히 경제적인 에너지원이 될 것이라고 정책을 수립했는데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니 태양광은 불·탈법의 온상으로 낙인 찍히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스스로가 우리를 부정하는 가슴 아픈 상황들이 이어지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통령들은 후보시절 공약을 걸고, 공약 등을 바탕으로 당선된다. 공약은 국정과제가 되고 국정과제는 정부 부처가 추진한다. 이 과정에서 정부 부처의 정책엔 대통령과 집권당의 철학이 자연스레 녹아 들어간다. 에너지 정책도 마찬가지다. 특정 에너지원에 방점을 찍고 해당 에너지원에 대한 정책에 힘을 쏟는다. 집권 당의 정책에 따라 특정 에너지원이 강조되는 것은 대부분이 공감한다. 다만 특정 에너지원을 ‘악(惡)’으로 치부하는 정책엔 문제가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우리나라는 북쪽으론 북한 동·서·남쪽으론 바다에 둘러 쌓인, 사살상 섬에 가까운 나라다. 유럽처럼 전기·LNG의 유통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에너지 안보는 상당히 중요하다. 여기에 자원도 풍족하지 않아 대부분의 에너지원을 수입에 의존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각 에너지에 대한 적절한 비율 조화가 필수란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국수력원자력이 3월 29일 한울원자력본부 홍보관에서 지역주민 약 650명이 참석한 가운데 신한울 3, 4호기 건설사업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에 대한 공청회를 열었다. 사진은 공청회 현장 모습. (사진제공=한국수력원자력)
▲한국수력원자력이 3월 29일 한울원자력본부 홍보관에서 지역주민 약 650명이 참석한 가운데 신한울 3, 4호기 건설사업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에 대한 공청회를 열었다. 사진은 공청회 현장 모습. (사진제공=한국수력원자력)

지난 문 정부에선 원전이 ‘악’이고 신재생이 ‘선(善)’이었다. 이번 윤 정부에선 신재생이 ‘악’이고 원전이 ‘선’이 됐다. 선과 악의 에너지 정책 소용돌이에서 산업부 공무원들 가치관·정체성의 혼란을 넘어 회의와 박탈감, 상실감까지 느끼고 있다.

특히 정권이 바뀌면서 이전 정부 에너지 정책을 추진한 공무원들이 ‘제물’이 되고 있다. 올해 1월 산업부 공무원 3명이 유죄선고를 받는 판결이 있었다. 원정 정책 추진 관련 감사원의 감사를 방해한 혐의가 있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이들 3명은 현재 옷을 벗고 공직에서 물러났다. 열심히 고시 공부를 해서 합격했을 때 이들은 이런 퇴직을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퇴직자를 소환하는 일도 발생했다. 감사원은 지난달 산업부 전직 과장 2명 등을 검찰에 수사 의뢰 요청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추진 관련 혐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국정 과제 추진이 ‘범법자’란 결론에 산업부 공무원들의 사기도 떨어지고 있다. 한 공무원은 “사익을 추구한 것도 아니고 그냥 일을 한 것인데 범죄자로 낙인찍하는 것이 한탄스럽다”며 “이래서야 어디 마음 놓고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6월 27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3 세계 태양에너지 엑스포’를 찾은 참관객들이 태양광 패널 청소기를 살펴보고 있다. 29일까지 개최되는 태양에너지 엑스포에선 태양광 관련 제품과 설비, 태양광발전소 투자를 비롯한 에너지 거래플랫폼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6월 27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3 세계 태양에너지 엑스포’를 찾은 참관객들이 태양광 패널 청소기를 살펴보고 있다. 29일까지 개최되는 태양에너지 엑스포에선 태양광 관련 제품과 설비, 태양광발전소 투자를 비롯한 에너지 거래플랫폼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전문가들은 정권이 바뀌면 에너지 정책에 변화는 당연하지만 정책을 추진하는 공무원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시대에 따라, 정권에 따라 에너지 정책은 바뀔 수 있고 에너지 정책이 달라지는 것은 나쁘진 않다”며 “다만 예전 에너지 정책을 추진하던 사람을 적폐로 본다던니 나쁘게 치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 시대상황에 맞게 다른 방향의 에너지 정책을 수립·추진하고자 노력한 것인데 적폐로 몰아가면 다음 사람들의 정책을 수립하려 안 한다”며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간다”고 조언했다.

같은 대학 이상준 교수는 “특수한 우리나라 에너지 여건 상 정치 영역에서 볼게 아니라 환경성, 안정성, 경제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며 “에너지 정책이 어떤 것이 옳고(선) 어떤 것이 옳지 않고(악)를 따지면 청산의 대상이 되고 공무원들은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누가 잘했다, 잘못했다를 따지기 보다 에너지 정책의 오류나 부족한 점이 있으면 이를 수정 보완해가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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