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풍경] 비틀거리는 응급실

입력 2023-07-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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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에 빠진 환자를 심폐소생술 하는 동안 응급실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 됐다. 술에 취한 주취자 때문이다. 건장한 직원이 그를 붙잡았지만 당해낼 수 없었고, 급기야 주삿바늘조차 빼버린 남자는 응급실 한가운데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링거 폴대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날 먼저 치료해 주지 않는 건데, 왜? 날 무시하는 거야!” 빠른 대처가 필요했다.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린 전과가 있던 남자를 그대로 두었다간 환자치료는 고사하고 집기를 부수거나 사람을 폭행할 수 있어서다. 다행히 힘센 직원들의 도움과 안정제 덕에 한 시간 넘게 전쟁터 같았던 응급실은 평온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의료진의 진짜 고난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밀려있던 환자를 봐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긴 대기시간에 화가 나거나 돌아가야 했던 분들의 불만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교대 시간을 훌쩍 넘겨서야 퇴근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오늘 같은 상황이 잦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이 의료진이 응급실 근무를 기피하는 또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얼마 전 ‘응급실 뺑뺑이’ 사건이 이슈화된 적이 있다. 교통사고로 다친 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구급차 안에서 사망한 사건이었다. 일부에선 의사 수를 늘리라고 제안하지만, 제아무리 수를 늘린다 해도 주취자나 진료를 방해하는 사람이 있는 한 늘어난 의료진의 이점을 크게 기대하긴 어렵다. 현재 술 취한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과 일부 지역에서 주취자 응급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대부분 자체적인 시설이 아닌 병원과의 협약 관계로 운영되는 실정이고, 응급의료진이 부족하다고 한목소리를 내는 상황에서 일부 술 취한 사람을 위한 의료진 배치 운영도 실효성이 떨어진다.

비틀거리는 응급실에 대한 해답은 음주에 관대한 문화와 법 개정에 있다.

단순 과음으로 응급실을 이용할 경우, 치료비 전액의 본인 부담 외에 과태료를 부과하고 주폭(酒暴)의 경우 진료를 거부할 권한을 의료진에게 주어야 한다. 음주단속이 교통사고를 예방하듯, 이 방법이 더 많은 응급환자의 생명을 살릴 수도 있고, 또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일부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응급실 뺑뺑이’ 문제가 불거진 시점에서 현장 의료진의 한사람으로서 주취자 문제를 공론화하고, 제도적인 보완을 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박관석 보령 신제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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