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신용 우려도, 빚 무서운 줄도 모르는 개미들…포모의 몰락 ‘성큼’

입력 2023-08-03 14:56 수정 2023-08-0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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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공여 잔고 추이 (이투데이)
▲신용공여 잔고 추이 (이투데이)
“예금 이자는 쥐꼬리만 한데 이차전지주는 그래도 꾸준히 오르더라고요. 미국 신용강등에 전 관심이 없어요.”

지난 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 있는 한국투자증권 여의도 본점 입구에서 만난 주부 박모(36) 씨 얘기다. 박 씨는 “주식 초보자지만 에코프로나 포스코홀딩스를 사는 게 금리가 4%대인 1년짜리 정기예금보다 낫겠다 싶어 새로 증권 계좌를 열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주식 관련 커뮤니티에는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에서 계좌를 새로 열었다는 이들이 많다. A증권사 관계자는 “미국 신용강등 사태가 터진 당일에도 손쉽게 계좌를 열 수 있는 모바일 고객이 많았다”고 했다.

넋 놓고 있다가 ‘벼락거지(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산 격차가 벌어진 사람)’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조바심이 서민·중산층과 청년층 사이에 다시 확산하면서 ‘앵그리 머니’가 주식 시장으로 향한다. 전날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내렸다는 소식에도 이틀(2~3일) 동안 개미들은 1조5000억 원대 주식을 사들이는 중이다.

질주하는 이차전지 장세에서 소외되면 안 된다는 ‘포모(FOMO) 증후군’도 증시로의 자금 쏠림을 부추기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미국 신용등급 강등의 여진으로 국내 금융시장이 변동성을 보일 것이라 경고한다.

▲고객 예탁금, 주가지수와 동행 (한화투자증권)
▲고객 예탁금, 주가지수와 동행 (한화투자증권)

위험 좇아 질주하는 개미들

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일 유가증권시장 신용거래융자액은 10조1264억 원을 기록했다. 1년여 만에 다시 10조 원대로 올라선 27일 이후 나흘째 10조 원대이다. 이차전지 급등세에 올라타기 위한 개인투자자들이 신용대출을 활용해가며 ‘초단타’ 매매에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달 국내 대형 5개 증권사 미래에셋·삼성·한국투자·KB·NH투자증권의 일간 활성 이용자 수(DAU) 평균은 6월(76만 명)보다 약 12%가량 늘어난 86만 명으로 집계됐다. 지난 1월 59만 명 수준에서 4월 75만 명으로 올라선 뒤 반년 만에 1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거래대금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개인투자자의 7월 에코프로 누적 거래대금은 6월(11조1000억 원) 대비 2.4배 늘어난 26조3000억 원, 에코프로비엠은 같은 기간 3조1000억 원에서 20조2000억 원으로 대폭 뛰었다.

이차전지를 미래 먹거리로 삼은 포스코 그룹주도 마찬가지다. 포스코퓨처엠의 지난달 개인 누적 거래대금은 3조3000억 원에서 11조4000억 원으로 4배 넘게 늘었고, POSCO홀딩스는 24조8000억 원으로 6월(4조1000억 원)보다 6배나 폭증했다.

신용대출 만기를 사흘 이내로 앞당긴 미수거래 개미들도 급증했다. 1일 기준 위탁매매 미수금은 5863억 원으로 약 6000억 원 턱 끝까지 올라 찼다. 지난달 초만 해도 4000억 원대였다. 미수거래는 신용융자보다 만기 기간이 짧은 대신 미수금을 사흘 안에 갚지 못하면 반대매매 청산을 당할 위험이 크다.

개미들의 ‘앵그리머니’는 초전도체로 옮겨가고 있다. 개인들은 국내 연구진의 상온 초전도체 개발 기대감이 커지던 지난주부터 코스피 시장에서 약 3조8700억 원어치를 순매수하고 있다.

박승영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확률이 낮고 큰돈을 벌 수 있는 주식을 사고, 손실을 보더라도 손실을 확정하지 않고, 적은 돈으로 계속 물을 타는 것이다. 반복하면 돈은 계속 녹아내린다”면서 “주식시장이 ‘포모’의 후유증을 겪고 있고 앞으로 겪을 것으로 예상한다. 과열된 업종의 비중을 줄이는 것이 좋다”라고 했다.

미국의 신용강등 소식이 전해진 후 코스피는 극심한 변동성을 보인다.

변준호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여름 랠리로 차익실현 욕구가 커지는 시점에 미국 등급 강등 악재가 발생해 금융시장의 단기 불확실성이 증폭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다만 2500대 후반에서 지지대가 형성될 것으로 봤다.

거품은 꺼진 후에 안다

▲하락종목이_상승종목보다 많고 더_많아지는 중 (한화투자증권)
▲하락종목이_상승종목보다 많고 더_많아지는 중 (한화투자증권)

1달러. 미국 가정용 생활용품 소매점 체인 베드배스앤드비욘드(BBBY)의 목표주가(2022년 8월 루프캐피털 )다. 당시 주가가 350% 이상 폭등한 때라 개미(개인투자자)들은 선뜻 믿지 않았다. 앤서니 추쿰바 루프캐피털 연구원은 당시 “단기적인 밈주식 열풍에 의해 BBBY 주가가 오른 것으로 주가를 상승시킬 만한 요인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서학개미들은 벌떼처럼 달려들어 이 주식을 사들였다. BBBY가 상장폐지를 한 달 앞둔 시점에서도 국내투자는 1266만 달러를 순매수했다. 미국의 20세 대학생이 BBBY에 투자했가 1400억 원을 벌었다는 소식 하나만 믿고 달려든 것이다.

모두가 맥주를 마시며 거품에 취해 있을 때, 광기를 통제하려는 시도가 무용지물일 때, 그때 비로소 거품은 터진다고 전문가들은 얘기한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단기간의 주가 폭락은 기술적인 반등을 노린 매수세를 자극하면서 재차 ‘포모’ 현상을 만들어낼 소지가 있다”며 “이차전지주들의 변동성 및 추가 투매, 신용 반대매매 등 후유증이 나타날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현대철학의 거장인 미셸 푸코는 ‘광기의 역사’라는 책에서 “빛에 홀린 이성은 태양을 향해 눈을 뜨고는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대상들이 빛의 비밀스러운 어둠으로 사라지는 바로 그 순간에, 시력은 스스로를 본다. 그 사라짐의 순간에.”라고 거품을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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