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청였지만 패닉은 없다?...피치가 쏘아올린 ‘등급 강등’에 부채 문제 수면위로

입력 2023-08-03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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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침체 공포 가고 부채 위기 급부상
미국 부채 비율 2025년 GDP 대비 118% 전망
“미국 재정 악화·채무 부담 문제 가속화”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피치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이 시장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국가 부채 문제가 한층 부각될 전망이다.

2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피치는 전날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가장 안전한 최상위 등급인 ‘AAA’에서 한 단계 아래인 ‘AA+’로 하향 조정했다. 강등 이유로는 미국의 재정 악화 우려, 국가 채무 부담 증가, 거버넌스 악화, 부채한도 문제를 둘러싼 정치적 혼란을 들었다.

이 소식에 미국과 유럽 등 세계 증시가 휘청거렸다. 다우지수를 포함한 뉴욕증시 3대 지수가 1~2%가량 하락 마감했고, 영국과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증시도 일제히 약세를 기록했다. 10년물 국채 금리도 연중 최고치를 찍었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장중 한때 전장 대비 10bp(1bp=0.01포인트) 오른 4.12%를 기록했다. 이는 작년 1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다만 시장이 받는 장기적인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2011년 S&P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했을 때와는 경제 상황이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2011년 S&P가 강등을 결정할 때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진이 이어지면서 미국 경제가 지금보다 훨씬 불안정한 상태였던 데다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마저 부채 위기가 절정에 달했다. 일례로 미국의 현재 실업률은 3.6%지만, 2011년에는 3배 수준인 9%였다.

3일 아시아증시도 대체로 하락했지만, 미국 국가 신용등급 여파가 제한되는 모습을 보였다. 전날 2% 넘게 떨어진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이날도 전일 대비 1.68% 하락 마감했지만,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0.58% 상승 마감하는 등 엇갈렸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피치가 쏘아 올린 공으로 이제 시장의 초점이 미국의 경기 침체에서 부채 문제로 전환했다고 지적한다. 2011년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을 주도한 데이비드 비어스 전 S&P 국가신용평가위원회 총괄 담당도 “최고 등급인 AAA 등급은 신이 주신 당연한 권리가 아니다”며 부채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그는 “미국의 재정 악화와 국가채무 부담 등이 가속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날 미국 재무부가 장기 국채 발행량을 늘리겠다는 계획을 내놓으면서 10년물 국채 금리 상승의 원인이 됐다. 재무부는 피치의 재정 위기 경고에도 분기별 국채 발행액을 종전 960억 달러(약 125조 원)에서 1030억 달러로 증액한다고 밝혔다. 이자 상환에 대한 부담이 커지자 발행액을 늘리기로 한 것이다. 사실상 피치가 지적했던 부채 문제를 재무부가 이날 다시 한번 입증한 셈이 됐다.

피치는 미국 정부의 부채 비율이 2025년까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118%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AAA 등급을 받은 국가의 평균 정부 부채가 GDP의 39%인 점을 감안하면 3배가 넘는 수준이다.

시장에서는 또다시 부채 상한선 폐지론이 고개를 들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는 피치의 신용등급 강등 결정을 “터무니없다”고 반박하면서 “부채한도는 시장에 불확실성을 주는 방향으로 양당에 의해 이용되고 있다”며 부채 상한선 폐지를 주장했다.

한편 미국 신용등급 강등의 원인 중 하나가 정쟁 리스크로 지목됐지만, 미국 정치권은 서로를 탓하며 비난하기에 바빴다. 카린 장 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공화당 간부의 과격주의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부추기고 거버넌스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스콧 페리 공화당 하원의원은 “등급 강등은 지출에 탐욕스러운 의원들이 일으킨 부정적 궤도가 미국 국민을 파멸로 이끌고 있다는 증거”라며 민주당의 재정정책을 문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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