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의 우문현답] ‘해가 뜨고, 진다’가 전하는 교훈

입력 2023-08-0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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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동설시절 믿었던 인식의 잔재
과학의 자정능력 오류 바로잡아
후쿠시마 ‘괴담’ 이젠 떨쳐 내길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 줄거리는 기억에서 가물가물한데, 주제가 ‘선 라이즈 선 셋(sun rise, sun set)’의 달콤한 가사는 지금도 기억 속에 남아 가끔 흥얼거리곤 한다. 대학원 시절 첫 학기에 사회과학 방법론 세미나를 수강하면서 ‘선 라이즈 선 셋’ 표현 속에 나름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음을 배웠다. 해가 뜨고 해가 진다고 표현하고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은, 우리네 언어와 인식의 한계 내지 특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해가 뜨고 해가 진다는 표현은 천동설을 굳게 믿던 시절 인식의 잔재임은 물론이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를 거치며 태양이 지구 주위를 회전한다고 믿던 천동설이 거짓이요, 거꾸로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지동설이 진실임이 밝혀졌다. 하지만 우리는 과학적 진실과 무관하게, 여전히 해 뜨는 광경에 가슴 벅차하고 해질녘 노을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기기도 한다. 결국 인간의 언어와 인식은 강한 관성에 뿌리내리고 있기에, 인식의 전환을 위해서는 남다른 노력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처리수) 방류를 둘러싸고 과학과 괴담 논쟁이 한창이다. 예전 광우병 수입 소고기 파동 당시 괴담도 소환되고 있고, 사드 기지 주변 성주 참외 괴담도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어느 쪽 과학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던 양식있는 원로의 탄식을 들으며, 이젠 과학도 진영 논리에 좌지우지되고 있는 현실이 더 황당하고 공포스럽다고 개탄한 칼럼도 읽은 기억이 있다.

하기야 과학에도 흑역사가 있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과학의 이름으로 인류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얼마나 많이 남겼던가. 최근 독자들로부터 열광적 지지를 얻은 책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는, 미국 스탠퍼드 대학 초대 총장을 지냈던 세계적 분류학자 데이비드 조던의 사례가 등장한다. 저자는 위대한 과학자의 생애를 따라가던 중, 우생학에 몰입한 그가 흑인, 이민자, 빈곤층 여성의 불임시술을 강제하기 위해 수용소를 설립했던 부끄러운 역사가 실재했었음을 눈으로 확인하던 순간의 충격을 생생히 기록하고 있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치르는 동안 과학이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는 사실도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무기가 물리학자들 연구에 힘입은 바 컸다면, 제2차 세계대전은 화학자들이 맹활약했던 무대라지 않던가.

그럼에도 과학은 자정 능력을 갖춘 신뢰할 수 있는 도구임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다. 과학자들은 경험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관찰, 실험, 조사 등 전문가 공동체가 요구하는 신뢰도와 타당도를 갖춘 방법을 최대한 활용해서 검증하는 작업에 전 생애를 바친다. 다만 검증에는 한계가 도사리고 있다. 일례로 ‘까마귀는 검다’는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 검증하려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까마귀가 검다는 사실을 밝혀야 한다. 하지만 이는 누구 봐도 불가능한 작업임이 분명하다.

이 난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영국의 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 1902~1994)가 제안한 개념이 바로 반증이다. 반대의 증거가 나올 때까지는 현재의 가설이나 주장이 참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얀 까마귀가 발견될 때까지는 ‘까마귀는 검다’가 참인 셈이다. 대신 반증 개념 자체가 부정확하게 사용되고 있음은 유감이다. 실제로는 입증 혹은 방증이라 표현해야 되는 맥락에서 반증이란 표현이 종종 등장한다. 반증을 ‘탄탄한 증거’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싶다면 필히 한자를 추가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과학조차도 괴담으로 치부하거나, 괴담을 과학으로 포장하는데 거리낌 없는 우리네 인식의 현주소다.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으니 실상은 지구가 태양의 어느 쪽으로 가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해가 뜨고 해가 진다고 한들, 우리 삶에 실질적 피해를 주는 일은 없다. 물고기 범주가 존재하지 않는다 한들, 바다낚시의 추억이나 물고기와 맺었던 특별한 경험의 의미는 그대로 살아있다고 룰루 밀러가 말했듯이.

하지만 오염수 방류 논쟁의 여파는 누군가의 생계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일이요, 국민의 불안 심리를 고조시키는 일임을 기억할 일이다. 과거 광우병 소고기나 성주 참외 파동처럼, 아니면 말고 식에다 아무도 자신의 말에 책임지지 않는 악습만큼은 더 이상 반복되어선 안 된다. IAEA 보고서에 담긴 결과를 깔끔하게 반증하는 유의미한 데이터가 담긴 보고서가 나오기 전까지, 무엇을 믿어야할지는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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