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정신의학회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제도 폐지’ 적극 논의 필요”
최근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 범인 일부가 과거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며, 국가 차원의 관리를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학계는 현행 법·제도에 의한 정신질환자 관리·치료에 한계가 있어 환자와 가족, 국민 누구도 제대로 구할 수 없는 만큼,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7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2016년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으로 자해·타해 위험이 큰 경우라도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정신질환자의 이송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환자를 강제입원 시키려면 2명 이상 보호자 신청, 서로 다른 병원에 소속된 전문의 2명 이상의 일치된 소견이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해 김영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위원장은 “정신질환 당사자가 강하게 거부하면 병원에 데려가기도 어렵다. 물리적으로 제압해 데려가도 강제 이송한 것으로 보고, 대법원에선 정신질환자 부모에게 징역형을 내린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초기 이송과 치료가 중요하지만, 이를 담당할 경찰이나 정신건강복지센터가 할 수 있는 조치는 현재 환자 설득 외에는 없는 실정이다.
김 위원장은 “이송을 위해 진단서나 소견서가 필요하지만, 진단서는 본인만 받을 수 있다”며 “경찰에 이송을 요청해도 정신건강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쉽지 않다. 이송했다가 나중에 당사자나 가족에 의한 민원이나 소송에 걸릴 위험이 있어 지금 제도로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국내 중증 정신질환자의 입원율은 낮다. 국립정신건강센터의 ‘국가 정신건강 현황 보고서 2021’에 의하면 국내 정신의료기관에서 진료받은 중증 정신질환자 65만1813명 중 입원환자는 5만9412명으로 9.1%에 불과하다.
또 조기 치료와 관리를 담당할 병상 수는 코로나 이후 급감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분석에 의하면 국내 정신병원 병상은 2017년 6만7000병상에서 2023년 5만3000병상으로 줄었다. 신체질환이 동반된 정신과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상급종합병원 정신과 병상도 낮은 의료수가에 따른 만성적자로 10년간 1000병상이 감소했다.
따라서 의학계는 정신질환 부담을 개인과 가족에게 돌려선 안 되며, 국가가 책임지고 중증 정신질환을 관리할 수 있는 법·제도 개선에 나서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신경정신의학회는 전날 성명서에서 “(흉기난동 등) 사고를 예방할 수 있도록 이송제도를 포함한 법·제도 개선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며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제도 폐지’를 적극적으로 논의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학회는 해외에서 시행하는 사법입원이나 정신건강심판원제도를 활용, 법원이나 행정기관이 나서서 입원 결정에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환자 인권과 생명 보호, 사회안전을 확보하고 의료진이 치료에만 전념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국가에서 중증 정신질환자의 신체적 구속을 할 수 있는 비자의 입원·치료를 국가가 결정한다. 미국은 판사가 결정하고, 영국과 호주는 복지부 산하 준사법행정기관인 정신건강심판원이 담당한다. 대만은 국민이 자해·타해 우려가 있는 정신질환자를 신고하면 경찰이 근처 의료기관에 호송해 치료를 받도록 하고 있다.
잇따른 범죄 발생에 일각에선 ‘조현병 등 중증 정신질환 환자를 격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명확한 연관성이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고,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도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해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신보건이사는 “편견의 시선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면 향후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나 서비스에 접근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며 “중증 정신질환도 조기에 치료받고, 적절하게 지역사회 의료서비스를 받는다면 충분히 회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도 “이런 일이 발생하면 잘 치료받는 환자와 보호자들에 대한 시선도 좋지 않게 된다. 인간관계가 끊어지기도 한다”며 “국가가 환자 이송부터 치료까지 잘 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중증 정신질환은 가족에게 떠넘겨선 안 된다. 적극적으로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와 관련 국가 정신건강현황 보고서 2021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의 정신질환 일 년 유병률은 8.5%, 평생 유병률은 27.8%로 나타났다. 이는 국민 4명 중 1명이 평생 한 번 이상 정신질환을 경험한다는 것을 뜻한다.
보고서에 의하면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여전히 좋지 못하다. ‘한 번이라도 정신질환에 걸리면 평생 문제가 있을 것이다’에 대해 29.3%가 동의한다고 답했고,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사회에 기여하기 어렵다’에 대해선 26.4%가 동의했다.
이에 대해 신경정신의학회는 정신질환 치료와 회복을 위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 과감한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청소년과 청년 시기 정신건강 관리를 위한 특별한 지원 체계 구축 △조현병 조기·집중치료 센터 설립·운영 및 지원 △조현병 질병부담에 대한 국가 재정지원 개선 등으로 해법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