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화 감독 “애환과 애증의 아파트…디스토피아 세계관에 딱”

입력 2023-08-09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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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태어나 자란 곳도 아파트였어요”
▲9일 개봉하는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연출한 엄태화 감독 (롯데엔터테인먼트)
▲9일 개봉하는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연출한 엄태화 감독 (롯데엔터테인먼트)

대지진 이후 살아남은 단 하나의 아파트를 둘러싸고 입주자와 외부인의 극심한 갈등이 불거진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개봉을 하루 앞둔 8일,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엄태화 감독은 “한국 배경의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만들 때 애환과 애증의 대상인 아파트만큼 더 좋은 공간이 있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온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든 대지진 이후 유일하게 원형이 보존된 황궁아파트에 몰려든 사람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재난드라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콘크리트 유토피아'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입주민 대표 영탁 역을 맡은 배우 이병헌의 호연에 가장 먼저 눈길을 빼앗기고, 재난 이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생존을 도모하는 군상의 면모를 현실감 있게 묘사한 엄태화 감독의 세밀한 연출에 점차 설득된다.

엄 감독은 “극단의 상황에서 ‘먹고사니즘’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하는 평범한 선택들이 모여 어떻게 큰 선택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한국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중요한) 공간인 아파트를 통해 우리 사회를 집약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작품 곳곳에는 과감한 연출 시도가 눈에 띈다. 외부인을 성공적으로 내쫓은 입주민이 ‘카메라를 쳐다보면서’ 아파트 내부 규칙을 설명하는 장면을 두고는 “자칫 ‘비급 영화’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면서 “그럼에도 관객 입장에서는 (인물이 등장해) 아파트를 유토피아처럼 설명하던 기존의 아파트 홍보 영상들을 떠올리면서 더 큰 재미를 느낄 것 같다”며 제작진과 배우를 설득했다고 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콘크리트 유토피아'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현실을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실감나야 한다’는 숙제도 컸다. 엄 감독은 “1986년도에 지어진 아파트라는 설정인 만큼 재개발 단지에 가서 문짝, 난간, 화단의 나무까지 긁어왔다”고 제작 당시를 돌이켰다.

또 “기역자 형태의 아파트 한쪽은 12층 높이의 24평형으로, 다른 쪽은 15층 높이의 32평으로 설계했다”면서 “영탁(이병헌)과 민성(박서준)처럼 같은 라인에 사는 인물들도 내부 공간을 다르게 연출해 캐릭터성을 부여했다”고 전했다.

다만 실제 아파트는 3층까지만 지었다고 한다. 배우들의 촬영도 모두 3층 이내에서 이루어졌다. 4층부터는 모두 후반작업 특수효과로 완성한 장면이다.

엄 감독은 “3층보다 더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장면을 찍을 때에는 시선이 더 밑을 향해야 했기 때문에 CG팀이 각도를 재고 바닥에 점을 찍어서 배우가 바라보게끔 했다”는 제작 뒷이야기도 전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콘크리트 유토피아'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가려진 시간’(2016)이후 7년 만에 엄태화 감독이 선보이는 신작이다. 강동원을 캐스팅해 화제를 모았던 전작 ‘가려진 시간’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다음 작품을 선보이는 데까지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지만, 순제작비 180억 원에 달하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연출을 다시 맡는 기회를 얻었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재미’였다”면서 “관객이 어떤 인물의 심정에 이입한 뒤에는 그 인물의 선택이 초래하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계속해서 맞이하는 것 자체가 재미가 될 거라고 봤다”고 했다.

또 “투자사는 물론이고 상업영화에 많이 출연한 배우가 이 작품을 선택한 데에는 관객이 그런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전했다.

엄 감독은 그러면서도 “영화가 끝났을 때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극 내내 외부인을 쫓아내자는 쪽과 함께 살 방법을 궁리하자는 쪽이 격돌하고, 마침내 갈등이 크게 폭발하며 모종의 결말을 맞는 까닭이다.

그는 “영화는 답을 내리고 있지 않지만,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생각하고 고민하는 건 언제나 중요한 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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