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에세이] 고물가 시대, 재정건전성 확보의 딜레마

입력 2023-09-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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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서울시내 대형마트를 찾은 시민들이 과일을 살펴보고 있다. 통계청의 '8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전년 동월 대비 과일 물가는 지난해 1월(13.6%) 이후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품목별로는 사과(30.5%), 귤(27.5%), 복숭아(23.8%) 순으로 크게 올랐다.  (뉴시스)
▲6일 서울시내 대형마트를 찾은 시민들이 과일을 살펴보고 있다. 통계청의 '8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전년 동월 대비 과일 물가는 지난해 1월(13.6%) 이후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품목별로는 사과(30.5%), 귤(27.5%), 복숭아(23.8%) 순으로 크게 올랐다. (뉴시스)

세금은 크게 직접세와 간접세로 나뉜다. 직접세는 세금 부담자가 곧 신고·납부자다. 소득세가 대표적이다. 간접세는 세금 부담자와 신고·납부자가 다르다. 재화·용역 구매자가 실질적으로 세금을 부담하지만 판매가 신고·납부하는 부가가치세, 개별소비세가 그렇다.

복지제도 확충과 인구 고령화로 재정지출은 추세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대부분 법률에 지출근거가 정해진 의무지출이라 줄이기 어렵다. 재량지출 구조조정은 그 효과가 제한적이다.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면서 지출 증가에 대응하려면 조세기반 확충을 통한 재정수입 증대가 필수다.

같은 이유로 문재인 정부에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물론, 국내외 연구기관들도 증세를 권고했다. 주로 부가세 인상을 제안했다. 부가세 인상은 물가 상승을 수반한다. 저물가 시기가 부가세 인상의 적기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1.9%에 불과했다. 이듬해 1.5%로 떨어졌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이 컸던 2020년과 2021년엔 각각 0.4%, 0.5%에 머물렀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이 골든타임을 놓쳤다.

현 정부에선 부가세 인상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가장 큰 이유는 고물가다. 지난해 물가 상승률은 5.1%까지 치솟았다. 올해엔 7월 2.7%까지 떨어졌으나, 지난달 다시 3.4%로 올랐다. 국제유가 상승 등 대외변수로 당분간 오름세를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부가세 인상은 물가 폭등을 초래한다. 이는 가계수지 악화, 소비 위축으로 이어진다.

결국, 증세를 통해 조세기반을 확충하려면 소득세 등 직접세를 인상해야 하는데, 이는 부가세 등 간접세 인상보다 부담이 크다.

먼저 다른 세목과 관계를 고려할 때 직접세 인상이 반드시 재정수입 증가로 이어진다고 보기 어렵다. 가령 법인세 인상으로 기업 순익이 줄어 투자가 위축되면, 이는 일자리 감소와 근로소득세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또 근로소득세 인상으로 근로소득자들의 처분가능소득이 감소하면, 이는 소비 위축으로 이어져 부가세 등 다른 세수를 줄일 수 있다.

무엇보다 경기가 어렵다. 무역은 ‘불황형 흑자’를 이어가고 있고, 산업지표는 악화가 가파르다. 실질임금은 지난해부터 ‘마이너스’를 못 벗어나고 있다. 여기에 고물가로 가계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자영업자들은 경영난에 신음하고 있다. 법인세든, 근로·종합소비세든 잘못 건드렸다가는 안 그래도 부진한 경기를 바닥까지 끌어내릴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재정수지만을 내세워 증세를 요구하는 건 무책임한 처사다. 불로소득 과세 강화와 비과세·감면제도 정비라면 또 모를까, 굳이 이 시기에 증세는 ‘세금을 깎아주면 투자가 늘 것’이란 막연한 희망에 기댄 감세만큼 위험한 발상이다.

증세에도 적기가 있다. 아무 때나 가능한 것이라면, 진작 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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