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여의도 검찰시대

입력 2023-09-10 06:52 수정 2023-09-14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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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 본원 지하에 있던 이발소가 최근에 문을 닫았어요. 직원들 이용이 많지 않다 보니 닫게 됐다더라고요. 아쉽죠” 금감원 출신 임원은 얼마 전 기자와 만나 퇴직 이후에도 이용하던 금감원 이발소가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전했다. 직원들이 금감원 내 이발소보다는 헤어숍을 더 선호하다보니 더이상 가게를 운영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그 임원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시대가 변한거죠.”

여의도하면 떠올리는 단어는 통상 ‘증권가’, ‘정치 일번지’였다. 동여의도에서는 한국거래소를, 서여의도에서는 국회의사당을 대표적인 건물로 떠올렸다. 지난해 검찰 출신 금감원장이 부임하기 이전의 얘기다. 2023년 현재, 여의도 곳곳에서 검찰에 대한, 검찰 출신 금감원장에 대한 얘기가 끊이지 않는다. 검찰 출신 대통령 정부에, 검찰 출신 금감원장은 새삼스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요즘은 검찰인사를 열심히 봐야겠습니다” 이달 법무부가 고위 인사를 발표했던 날, 취재원이 한 말이다. 여의도에서 수십년 일을 하면서 금감원은 늘 관심의 대상이었지만, ‘시대가 변하다’보니 검찰 소식까지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에서도 금감원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과거 ‘모피아(기재부+마피아 합성어)·금융위’ 출신 내지 민간에서 금감원장을 맡았을 때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감독·검사 방향, 규제·제재 수위, 금융위원회와의 관계 등이 관심사로 꼽혔다. 그러나 지금은 금감원 검사, 검찰의 압수수색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면서 검사·조사·수사에 대한 부담감이 증가한 것이다. 지난달 24일 금감원이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3대 운용사에 대한 재검사 발표 이후 그 압박감은 더 커진 분위기다.

금감원의 재검사 결과 브리핑 이후 줄곧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특혜성 환매에 따른 수익자로 거론된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미래에셋증권은 라임마티니4호 등에 투자한 모든 고객에게 시장 상황에 따라 환매를 권유했고, 저를 포함한 전 고객이 환매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특혜 환매 의혹을 전면 부인하면서 긴장감의 강도는 높아졌다. 김 의원의 입장문 발표 이후 금감원은 일부 증권사를 대상으로 검사에 돌입했다. 덩달아 검찰은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올해 5월 차액결제거래(CFD)를 악용한 ‘라덕연 주가조작 사태’와 관련해 검찰이 몇몇 증권사를 압수수색한 데 이어 또 다시 수사의 칼날을 증권업계에 겨눈 것이다.

다음 주 금감원장의 해외 출장에 금융지주·증권·보험사 CEO들이 동행한다. 특히 미래에셋증권과 NH투자증권 CEO가 금감원장 일정에 참여한다는 소식에 증권업계에서도 “불편한 동행”이라며 고객를 내젓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뿐만 아니라 전 국민의 관심사인 사모펀드 사태의 잘잘못을 따지는 시점에 증권사CEO와 출장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모펀드 재검사 발표 이후에도 이들 CEO는 변동없이 해외 출장에 동행하기로 했다.

이달 4일에 열렸던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이복현 금감원장이 참석했다. 이날 한 국회의원은 이 원장을 향해 “처음에 기대가 참 컸다. 전반적인 금융 시스템에 잘못된 게 너무 많다. 법이 좀 미진한 부분을 제의도 해 주시고…”라고 말했다. 검찰 출신 금감원장이 처음 등장했을 때 ‘새로운 시대’가 올 수 있다고, ‘검찰 출신’이라는 부정적인 시선은 기우일 뿐이라고 일부 직원들은 얘기했다.

이 원장이 부임한 지 1년여가 흘렀다. 여의도 시곗바늘이 어느새 한 곳에 멈춰있다. 3년 전 라임자산운용 중간검사 보도자료를 보면 모펀드, 자펀드의 현황이 담겨 있다. 총 4616개(개인+법인) 계좌가 투자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엔 ‘특혜 환매, 다선 국회의원’으로 투자자, 분쟁조정 여부 등의 주제는 그림자에 가려졌다. 금융소비자들 입장에서 억울함을 풀어줄 ‘실세 금감원장’이 절실했다. 그러나 지금은 금감원장의 의중이 무엇일지 해석하는 데 급급할 뿐이다. 2023년 현재, ‘여의도 검찰시대’를 마주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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