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 고양이가 참치에 ‘진심’인 까닭

입력 2023-09-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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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 식용 금지법 통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매사 타협하지 않고 맞붙는 여야도 이 문제만은 별 이견이 없는 듯하다. 여론을 봐도 국민 다수가 찬성하는 것 같다.

35년 전 88서울올림픽의 상황을 떠올리면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걸 실감한다. 당시 프랑스의 한 유명 배우가 “개고기를 먹는 한국은 야만 국가”라고 비난하며 올림픽을 보이콧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국내 여론은 “문화의 차이일 뿐”이라며 거위를 가둬놓고 부리를 벌려 억지로 먹이를 먹여 비대하게 만든 간으로 만든 요리 푸아그라를 먹는 프랑스인의 위선을 역공했다.

전 세계 반려동물 사료시장 130조 원

그러나 한 세대가 지나는 사이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가정이 급증했고 이들의 지위도 애완동물에서 반려동물로 격상했다. 그러다 보니 ‘자발적으로’ 보신탕집을 멀리하고 개 식용 금지법이 나오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지구촌의 개 5억 마리와 고양이 4억 마리를 위한 사료와 간식 시장 규모는 무려 1000억 달러(약 130조 원)에 이른다.

그럼에도 개나 고양이의 미각에 대한 연구는 그리 많지 않다. 개는 사람처럼 잡식동물이라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육식동물인 고양이의 식성에 대해서는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실제 고양이의 미각은 사람과 꽤 달라 기본맛의 하나인 단맛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설탕 같은 단맛을 내는 분자를 감지하는 단맛수용체의 유전자가 고장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자연에서는 열매가 당분의 주된 공급원이므로 이를 먹지 않는 육식동물 대다수도 고양이처럼 단맛을 못 느낀다. 그렇다고 달콤한 맛을 못 느끼는 고양이를 동정할 필요는 없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또 다른 기본맛인 감칠맛에서는 고양이가 탁월한 미식가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감칠맛은 먹이(음식)에 영양소인 단백질이 풍부하다는 걸 알려주는 신호로, 단백질을 이루는 아미노산 20종 가운데 하나인 글루탐산이 혀의 감칠맛수용체를 자극할 때 느끼는 맛으로 알려져 있다. 글루탐산의 나트륨염인 글루탐산나트륨, 즉 MSG가 음식에 맛을 더하는 조미료로 널리 쓰이는 배경이다. 그런데 이건 사람 얘기고, 고양이는 글루탐산에 감칠맛을 느끼지 못한다. 여러 포유류 동물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글루탐산의 맛을 느끼는 게 오히려 예외인 것으로 밝혀졌다.

고양이의 감칠맛 수용체는 아미노산이 아니라 IMP 같은 핵산에 반응했고 몇몇 아미노산의 존재는 핵산의 감칠맛을 더 강하게 느끼게 도와주는 역할에 머물렀다. 사람에서는 반대로 핵산이 보조 역할이다. 흥미롭게도 육류(생고기)에는 핵산과 몇몇 아미노산은 풍부하지만 글루탐산 농도는 낮다. 즉 고양잇과 맹수가 사냥한 먹이를 맛있게 먹는 것처럼 보이는 건 정말 감칠맛이 끝내주기 때문에다. 반면 양념도 안 한 생고기를 뜯어 먹는 사람은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TV 프로그램에 나온다.

고양이가 참치라면 사족을 못 쓰는 이유도 감칠맛 때문이다. 참치에는 IMP를 비롯한 핵산이 유독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참치 어획량의 6%가 고양이 먹이로 쓰이고 있다. 그런데 사람은 왜 IMP가 아니라 글루탐산에 감칠맛을 느끼는 걸까.

참치에 풍부한 핵산에서 감칠맛 느껴

포유류 수십 종의 감칠맛 수용체 유전자를 분석해 비교한 결과 사람이 포함된 유인원과 덩치가 큰 몇몇 원숭이의 염기 서열은 고양이를 비롯한 많은 동물의 염기 서열과 달랐다. 즉 사람을 포함한 일부 영장류의 진화 과정에서 변이가 일어나 핵산 대신 아미노산인 글루탐산에 감칠맛을 느끼게 바뀐 것이다. 초기 영장류는 주먹만한 크기 열매와 곤충이면 충분했지만 덩치가 커지자 잎을 먹어야 했고 그 결과 잎에 풍부한 글루탐산을 맛있게 느끼게 진화한 것이다.

사람의 감칠맛은 식물 단백질이 풍부하다는 정보인 셈이다. 20세기 초 일본 과학자가 감칠맛을 발견한 것도 육류가 아니라 해조류인 다시마였다. 당시 기본맛으로 알려진 단맛, 짠맛, 신맛, 쓴맛을 내는 식재료의 조합만으로는 다시마 육수의 독특한 감칠맛을 낼 수 없어 그 비밀을 밝히던 중 글루탐산나트륨(MSG)을 발견한 것이다.필자는 비위가 좀 약한 편이라 육회도 못 먹고 참치회도 일부러 먹지는 않는다. 대신 언양불고기처럼 불맛과 양념 맛이 더해진 고기라야 젓가락이 간다. 한마디로 고기를 먹을 줄 모른다는 말이다. 그래도 인류가 고기(핵산)가 아닌 양념(MSG)에서 감칠맛을 느끼게 진화했다니 좀 위안이 된다. 우리가 고기를 먹는 걸 지켜보는 반려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니들이 고기맛을 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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