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현재 러시아의 위협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상황이 됐다.
러시아는 9월 10일부터 13일까지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국제회의 동방경제포럼을 개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참석했으나 외국 정상들은 한 사람도 참석하지 않았다. 10개국 정도가 대표단을 파견했고 고위급으로는 중국 부총리와 라오스 부주석이 참석한 데 그쳤다.
이번 포럼에서 러시아 국영 언론이 보도한 일본에 관한 내용이 파문을 일으켰다. 자세히 살펴보면 11일 러시아 국영 통신사 리아노보스티가 “일본 정부의 ‘선주민족 보호’ 위선에 대한 전문가 해설”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었다. 해당 기사는 14일 홋카이도대학 관광학 연구센터 등이 ‘원주민 관광의 도전’이라는 국제심포지엄을 여는 것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일본학 전문가인 아나톨리 코시킨의 견해를 빌어 문제의 심포지엄이 ‘가장 순수한 형태의 위선’이라고 비판했다.
기사는 “홋카이도는 일본 땅도 아니고 야마토국의 영토도 아니고 일본 정부가 아이누족과의 숱한 싸움으로 정복한 식민지”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아이누족은 군사 방면에 매우 능하고 용기가 있다’, ‘무사도를 포함해 일본 군사의례의 대부분은 아이누족에게서 배운 것이다’, ‘할복 의식은 일본인이 아이누족에게서 유래된 것으로 분명히 알려져 있다’ 등 근거가 희박한 주장을 전개했다. 일본에서 무사도는 가마쿠라 막부 시대(1192~1333년)에 발달하였고 할복은 헤이안시대(794-1191년) 말기에 시작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아이누족이 무사도나 할복의 기원이라는 근거는 들어본 적도 없다.
지난해 4월에는 러시아의 제3당 공정러시아의 당수이자 하원 부의장이기도 한 세르게이 미로노프가 “홋카이도의 전권은 러시아에 있다”고 주장한 적이 있어 앞으로 홋카이도에 관한 러시아 측의 ‘선전’이 가속화될 가능성도 있다.
기사는 또 아이누족과 함께 일본에서 차별받고 있는 사람들의 예로 재일 한국인, 피차별 부락 출신자, ‘류큐(현 오키나와) 열도 주민’을 열거했다. 류큐 열도에 대해서는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면서 “고대에 그들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알려져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과거 류큐는 중국의 책봉체제 하에 있었지만, 중국의 일부였던 적은 없다.
이런 사실에 반하는 정보를 러시아가 확산하는 것은 예상된 일이라고 한다. 세르기 콜슨스키 주일 우크라이나 대사는 러시아 측 기사를 영어로 요약한 X(옛 트위터)의 글을 인용하며 “예상된 전개다. 우리는 러시아가 어떻게 역사를 조작하는지 잘 알고 있다”고 썼다. 그런데 예상된 전개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전술한 공정러시아 당수 미로노프는 지난해 4월 다음과 같이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어느 나라든 원한다면 이웃 국가들에 영유권을 요구하고 정당화하는 유력한 근거를 찾을 수 있다”며 “일본 정치인들이 2차 세계대전의 교훈과 소련군의 침공으로 괴멸된 관동군의 운명을 까맣게 잊고 있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 측의 기억을 되살려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말은 분명한 일본에 대한 협박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미로노프를 푸틴의 입이라고 말한다. 그가 당수인 공정러시아당은 사실 푸틴이 만들어준 관제 야당이다. 그러므로 미로노프는 푸틴의 생각을 말했을 뿐이다.
같은 시기 러시아의 정치학자 세르게이 체르냐호프스키도 다음과 같이 비슷한 발언을 했다. 그는 “일본 정부는 역사적으로 러시아령이었던 홋카이도를 부적절하게 보유하고 있다”며 “홋카이도에는 아이누족이 살고 있다. 사할린이나 블라디보스토크 근교, 캄차카 남부에 사는 민족과 동일한 러시아 민족 중 하나”라고 말했다.
사실 푸틴도 2018년 12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인권평의회에서 “아이누족을 러시아의 원주민으로 인정한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
이러한 러시아 측 태도는 우크라이나 침공이 성공한 다음 일본의 홋카이도에도 침공하겠다는 러시아의 계획으로 나온 발언이 아닌가 싶다. 러시아는 1945년 8월 일본이 패전했을 때 홋카이도를 러시아 땅으로 요구한 적이 있다. 러시아는 태평양으로 나가기 위해 홋카이도라는 큰 부동항을 갖고 싶어 한다. 그러므로 홋카이도에 사는 아이누족이 러시아의 원주민이라고 주장하여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홋카이도에 침공하겠다고 푸틴은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19세기 중반까지 일본의 공식지도에 홋카이도는 없었다. 홋카이도는 일본이 19세기에 개척하여 일본영토로 만든 땅이다. 그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아이누족을 강제적으로 일본인화했다. 강제적으로 창씨개명을 시켰고 그들의 모든 땅을 빼앗고 다시 작은 땅을 분배해 주었다. 일본 정부는 학교를 세워 아이누족에 일본 문화와 일본어를 강요했다.
그러므로 러시아 원주민인 아이누족을 보호하기 위해 러시아가 홋카이도에 침공한다고 계획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러시아의 움직임을 알게 된 일본은 미국뿐만이 아니라 한국과의 군사협력을 강화하기 시작했고 지난해 10월에는 약 30년 만에 홋카이도에서 2주간에 걸친 미일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했다. 푸틴의 위협에 과연 일본이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