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부채(가계+기업) 규모가 최근 5년 새 비교 가능한 26개국 가운데 가장 많이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어제 공개된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부채 데이터베이스’ 업데이트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GDP 대비 민간부채 비율은 2017년 238.9%에서 지난해 281.7%로 42.8%포인트(p) 상승했다. 가계부채와 기업부채가 나란히 급증한 탓이라고 한다.
우리 민간부채는 GDP를 2배 이상 웃도는 절대 규모만 봐도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더 우려스러운 측면도 있다. 부채 악화의 속도다. 5년 새 42.8%p 급증은 데이터 확인이 가능한 26개국 중 압도적인 1위다. 2017년 한국의 GDP 대비 민간부채 비율은 전체 11위였다. 하지만 가파른 상승세로 매년 순위가 뛰어오르더니 지난해 전체 2위로 올라섰다. 제동장치가 고장 난 폭주 자동차가 따로 없다.
부문별로 보면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108.1%를 기록했다. 이는 2017년(92.0%)보다 5년 만에 16.1%p 증가한 것이다. 절대 규모로는 스위스(130.6%)에 이어 2위지만 26개국 중 유일한 두 자릿수 증가율이다. 슬로바키아(9.1%p), 일본(7.7%p), 요르단(6.0%p), 룩셈부르크(3.9%p), 칠레(2.8%p) 등도 유사한 고민을 안고 있지만,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급등한 한국과 입장이 같을 수는 없다. 심지어 가계부채 1위인 스위스마저 5년 새 2.5%p 느는 데 그쳤다. 눈덩이 굴러가듯 빚더미가 늘어나는 한국 상황과는 딴판인 것이다. 이대로 가면 한국이 스위스를 제치고 가계부채 1위로 올라서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일 따름이다.
앞서 한국은행은 가계부채 비율이 지난 2분기 기준 101.7%에 달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적신호였다. 하지만 IMF의 새 자료는 국내 가계부채 문제가 과소평가됐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시사한다.
당국은 눈을 크게 뜰 필요가 있다. 국내외 전문가들이 부채 문제가 심각한 대표적 국가로 지목하는 미국은 최근 5년 새 가계부채 규모를 GDP 대비 79.5%에서 77%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미국만이 아니다. 캐나다, 영국, 오스트리아 등도 같은 방향으로 달려갔다. 유럽의 ‘부실 국가’ 그리스마저 부채를 대폭 줄였다. 그러나 한국은 역주행을 했다. 가계부채 문제를 키운 것으로 따지면 단연 세계 1위다. 문제가 있어도 아주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제 전임 정부 탓만 할 수도 없다. 정부는 부채와 관련한 정책조합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겸허하게, 그리고 전반적으로 돌아봐야 한다.
좌고우면하면서 미적거려도 좋을 때가 아니다. 가계부채만이 아니다. 기업부채도 방심을 불허한다. 한국의 GDP 대비 비금융 기업부채 비율은 2017년 147.0%에서 지난해 173.6%로 26.6%p 급증했다. 룩셈부르크(38.0%p)에 이어 비교 대상 국가 중 2위다. 국가 경제를 짓누르고 정책 선택을 어렵게 하는 부채 문제를 계속 방치하면 어떤 큰불이 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