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로] 중견기업특별법의 상시화, 그 이후를 준비하며

입력 2023-10-05 05:00 수정 2023-10-05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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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부족하다 여기면서도 끊임없이 법과 제도, 정책을 다뤄야 했다, 인생 1막이라며 다소 감상적으로 농을 주고받지만, 30년의 나날은 심야와 새벽녘의 가로등 불빛으로 가득찼다. 산업과 기업의 성장을 위한다고 공언했지만 그 많은 보고서의 숫자와 그래프들이 과녁에 적중했는지, 묻는다면 여전히 두렵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상근부회장으로 취임한 지난해 8월, 예의 ‘공무원스러운’ 질문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건강한 산업생태계 조성, 튼튼한 성장사다리 구축이라는 목적에 비춰볼 때, 사정이 있었겠지만 10년 한시법이라는 중견기업 특별법의 부칙조항은 이해할 수 없었다. 답이 필요했다.

부끄럽지만 중견기업을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중견기업이 뭐죠?” “기업은 대기업 아니면 중소기업 아닌가요?” “왜 중견기업을 지원해야 하죠?” “중견기업 지원을 확대하면 중소기업 지원이 줄어드는 건 아닌가요?” 이어지는 질문에 앞서 스스로 확신해야 했다. 더 이상 어떤 미련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중소기업법에 따른 ‘중소기업’이 아니고, 공정거래법 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의 ‘대기업’이 아닌 기업, 전체 기업 수의 1.4%(5480개)에 불과하지만, 총 고용의 13.1%(159만 명), 수출의 17.3%(1109억 달러), 매출의 15.4%(853조 원)를 담당한다는 사실은 선명했지만 충분치 않았다.

평균 100건 이상의 지식재산권을 보유한 2000여 개 제조 중견기업 중 1700여 개사가 핵심 산업인 소재부품장비 분야 기업이며, 세계 최초 또는 1등 기업들이 넘쳐나고, 업력이 평균 23년에 달한다는 부연도, 코스피 상장기업의 55%, 코스닥의 29%가, 산업부 선정 세계일류상품의 3분의 1 이상이 중견기업이라는 설명 또한 마찬가지다. 같은 기준이라면 대기업이 더 우위다.

답은 중견기업 너머에 있었다. 명확한 숫자로 표시되는 놀랄 만한 성취를 벗어나, 대한민국 산업과 경제 전반의 성장을 연결하는 상징이자 실체로서 중견기업은 진짜 가치를 드러낸다. 상시법으로 전환된 특별법의 당위가 확인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중견기업을 거치지 않고 대기업이, 글로벌 전문기업이 될 수는 없다. 청년을 건너뛴 장년이 불가능한 것과 같은 이치다. 특별법은 중견기업만을 위한 것이 아닌, 모든 기업의 어제와 내일을 지탱하는 보루다. 파랑새는 언제나처럼 그 자리에 있었다.

한시법의 꼬리표를 뗀 중견기업 특별법이 10월 19일 마침내 시행된다. 지난 3월 30일, 본회의장을 온통 녹색으로 물들이며 여야의 폭넓은 합의로 국회를 통과한 바다. 그리고 이제, 특별법의 전면 개정을 준비한다. 답을 얻어서일까, 가파른 길 앞에서 몸은 충분히 풀려 있다. 모두의 수고에 미력을 보탤 뿐이지만, 나름 ‘놀던 물’이다.

초기중견기업에 집중된 특별법의 성격을 일신하고, 구체적인 지원 체계 구축은 물론, 중견기업의 역동성을 극대화할 법률 간 연계성을 강화해야 한다. 통상환경 변화에 따른 공급망 재편, 탄소중립 및 디지털 전환 대응이라는 거시적 처방과 함께 가업승계, 세제, 금융, R&D, 인력, 규제 등 제반 분야의 고질적인 애로를 해결하는 법적 준거로서 디테일을 갖춰야 할 것이다. 신성장동력 발굴을 위한 기금과 펀드, 지식재산 보호 등의 새로운 근거 규범도 포함해야 한다. 중견기업 정책의 실효성을 대폭 끌어올릴, 믿기지 않지만 아직 존재하지 않는 중견기업 종합통계시스템의 설치 및 운영도 특별법이 품어내야 할 시급한 과제다.

지난여름, 태풍과 폭우로 삶이 무너져 버린 이웃들의 깊은 주름 위로, 푹푹 꺼지는 잼버리 갯벌 웅덩이 건너편으로 많은 기업이 앞다퉈 달려갔다. 두말없이 성금을 건네면서도 부족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던 중견기업 대표들의 음성을 기억한다. 기업가정신은 혁신과 도전의 원천이자, 사람을 살리려는 절박한 이타의 심성이기도 한 건 아닐까, 전화를 끊으면서 생각했다.

수없이 되뇌지만 결국 기업이 움직여야 경제가 돌아간다. 법이든 제도든 혹은 인식이든, 일부의 잘못을 일반화해 기업 전부를 매도하는 철지난 관성에 휘둘릴 때가 아니다. 몰이해와 외면은 공동체에 균열을 일으키고, 풍요와 쇠락은 순간에 갈린다. 단단하게 꾸려질 새로운 중견기업 특별법이 커다란 변화의 전기가 될 수 있도록, 많은 분의 공감과 응원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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