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6일 본회의에서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부결 처리하면서 30년 만의 '대법원장 장기공백' 사태가 벌어졌다. 임명안이 부결됨에 따라 윤석열 대통령은 대법원장 임명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진행해야 한다. 대법원과 더불어 양대 최고 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장의 임기도 다음 달 종료되는 만큼 윤 대통령이 새 후보자에 대한 지명 절차를 서둘러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가 이날 오후 본회의에서 이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에 대해 무기명 투표를 실시한 결과, 임명동의안은 출석 의원 295명 중 찬성 118명, 반대 175명, 기권 2명으로 부결됐다. 임명건의안의 가결 요건은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 찬성이 가결 요건이다.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이 후보자가 성범죄 관련 항소심 일부에서 감형한 이력을 비롯해 보수적 성향의 판결과 가족의 재산형성 과정이 인사청문 과정에서 소명되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이날 임명동의안 '부결'을 당론으로 정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이 후보자에게 '치명적 흠결'이 드러나지 않았다며 반박해왔다.
대통령실 이도운 대변인은 이날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직후 용산 청사 브리핑에서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야당의 일방적 반대로 부결됐다"며 "반듯하고 실력 있는 법관을 부결시켜 초유의 사법부 장기 공백 사태를 초래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는 국민이고, 이는 국민 권리를 인질로 잡고 정치투쟁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부결이 예측된 상황에서 차기 후보자를 찾아봤는지에 대한 질문에 "차기 후보자를 미리 찾아보는 노력은 적절하다고 할 수 없다"라며 "저희로서는 최선의 후보를 찾아 국회의 임명동의를 요청하고 기다렸다.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사법 공백을 최소화하고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적임자를 찾는 데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답했다.
이날 임명안이 부결됨에 따라 대법원장은 윤 대통령이 다시 처음부터 새 후보자를 지명하는 등 임명 절차를 다시 거쳐야 한다. 또한, 국회의 후보 검증 절차 또한 거쳐야 하기 때문에 다음 본회의가 개최될 때까지 최소 한 달 이상의 '장기 공백'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예정된 다음 본회의는 11월 9일이지만, 이달 10일부터 27일까지 국정감사가 진행될 예정이어서 본회의 이전에 인사청문회를 마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은 1988년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지 35년 만이다. 아울러 대법원장 공석 사태는 지난 1993년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사퇴했던 김덕주 전 대법원장 이후 30년 만이다.
한편, 대법원과 더불어 양대 최고 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 유남석 소장의 임기도 다음 달 10일 종료될 예정이어서 '국가 사법 기능' 마비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헌재 소장도 대법원장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실이 지명하면 국회의 임명동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에 따라 대법원장과 헌재소장 후보자의 청문 및 표결 일정이 동시에 진행될 수도 있으며, 최악의 경우 양대 최고 사법기관 수장이 모두 자리를 비우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사법 기능 마비가 우려되는 만큼 윤 대통령은 서둘러 대법원장에 대한 후보자 지명 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새로운 대법원장 후보로는 당초 이 후보자와 함께 하마평에 올랐던 오석준(61·사법연수원 19기) 대법관, 이종석(62·15기) 헌법재판소 재판관, 홍승면(59·18기)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등이 다시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파주 출신인 오석준 대법관은 현직 대법관으로, 이미 국회 청문회를 통과한 경험이 있다. 특히, 윤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1년 후배로, 사법시험을 같은 기간 준비하는 등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 대통령과 서울대 법대 79학번 동기인 이종석 재판관 또한 국회 청문회를 통해 이미 검증절차를 거쳐 야권의 견제를 피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