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에세이] '극단적 비효율' 국정감사, 언제까지 이대로?

입력 2023-10-0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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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재 국회사무총장과 권영진 입법차장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사과 앞에서 열린 국정감사 종합상황실 현판식에서 현판을 걸고 있다.  (뉴시스)
▲이광재 국회사무총장과 권영진 입법차장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사과 앞에서 열린 국정감사 종합상황실 현판식에서 현판을 걸고 있다. (뉴시스)

추석 연휴 종료와 함께 관가가 비상 근무체제에 돌입했다. 국정감사(국감)를 앞두고 쏟아지는 국회의원실발 자료 요청에 공무원들은 비자발적 야간·주말근무에 시달리고 있다.

통상 국감은 9~10월 중 보름에 걸쳐 진행된다. 일상적인 국회·정부 활동은 비수기에 돌입한다. 자연스럽게 언론의 취재수요도 국감에 쏠린다.

이를 국회의원들은 홍보 기회로 삼는다. 국감 1~2주 전부터 각 부처에 자료를 요구하고, 제출받은 자료를 보도자료로 가공해 언론에 배포한다. 주로 특정 사안에 대한 시계열 자료다. 보도자료 제목은 ‘00, 최근 5년간 00% 증가’ 같은 식이다. 본문에는 의원의 발언을 붙인다.

제목에 숫자가 포함된 자료는 보도가 잘 된다. 주제나 메시지가 명확하고, 가독성이 좋아서다. 보도물에는 의원 이름이 출처로 표기된다. 의원들에게 욕보다 무서운 건 무관심이다. 이런 점에서 출처로라도 본인의 이름이 들어간 보도물은 의원들에게 좋은 홍보 수단이다.

문제는 자료의 질이다. 의원실에서 배포되는 자료는 대부분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굳이 부처에서 자료를 받지 않아도 국가통계포털(KOSIS)이나 각 부처·기관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 가능한 경우가 많다. 기존에 보도됐던 내용의 ‘재탕’도 비일비재하다. 애초에 의원의 이름을 알리는 게 목적이기에 자료 본문에 날카로운 분석이나 적절한 대책이 제시되지도 않는다. 이런 자료들은 의원 이름 홍보 외에 의미를 찾기 어렵다. 공무원들만 희생될 뿐이다.

특히 내년엔 국회의원 총선거가 예정돼 있다. 총선을 앞둔 의원들은 어느 때보다 인지도 높이기에 혈안이다. 무의미한 보도자료 배포도 그만큼 많다.

의원실발 보도자료가 현실을 왜곡하는 사례도 많다. 이는 무의미한 자료 양산보다 심각한 문제다.

일례로 한 의원실에선 최근 월별 유산아 수를 분석한 자료를 배포했다. 저출산이 심각한 상황에 나름대로 시의적절한 자료였다.

문제는 해석이다. 의원실은 7~8월 유산아 수가 상대적으로 많단 점을 근거로 더위와 유산을 연관 지었다. 여기에서 간과한 건 임신주차다. 유산은 주로 12주차 이내에 발생한다. 월별 출생아는 1~4월 상대적으로 많다. 유아기 월령별 발달 편차가 커 부모들이 연초 출산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1~4월 출산하려면 임신 시기는 3~7월이 돼야 한다. 결국, 월별 유산아가 가장 많은 7~8월은 임신 12주차 이내 임신부가 가장 많은 시기이기도 하다. 전체 임신부의 수를 고려하지 않고 월별 유산아 수를 근거로 무더위와 유산을 연관 짓는 건 성급한 일반화다.

다른 의원실에선 180일 이상 의약품 장기처방이 늘었단 점을 내세워 처방일수를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여기에선 지역별 의료기관 편차나 장기처방 다빈도 질환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장기처방 대상 질환은 주로 당뇨, 고혈압 등 만성질환이다. 만성질환이 아니더라도 의료기관 접근성이 떨어지면 ‘자주 처방받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런 현실이 고려됐다면, 정책 제안은 처방일수 제한이 아닌 지역별 의료 편차 해소 등이 돼야 했을 거다.

사실 국감 보도자료의 질이 올해만 낮은 건 아니다. 매년 그랬다.

실제 감사도 마찬가지다. 의원들은 ‘정책’보다 ‘사람’을 놓고 싸운다. 피감기관에 대한 막무가내식 호통은 오래된 전통이다. 국감의 생산성이 극단적으로 낮은 문제를 개선하고자 분리국감, 상설국감 등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의원들은 크게 관심이 없다. 본인 이름만 띄우면 그만이다.

올해는 다를 거란 기대도 안 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 양평 고속도로 논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등 정쟁거리가 널렸다. 총선을 앞둔 의원들은 무의미한 보도자료를 양산하듯 인지도를 높이고자 더 격하게 정쟁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이쯤 되면 분리국감, 상설국감 논할 필요 없이 국감 자체를 없애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최소한 정부부처 등 피감기관들은 국감에 투자할 시간을 본업에 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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