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규탄하는 대학생들, 이유는? [이슈크래커]

▲13일 오후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내 게시판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무력 충돌과 관련한 팔레스타인 지지 성명서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팔레스타인의 무장단체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이 연일 격화하고 있습니다.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민간인들의 피해가 커지자 NYT, CNN 등 외신은 중동판 '9.11테러'라는 말까지 꺼내놓았는데요.

이들의 전쟁을 두고 일방적으로 한 쪽을 비방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이같은 주장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인데요. 이들은 왜 이런 주장을 내놓고 있는 것일까요.

하마스의 기습 선제공격…연일 격화되는 전쟁

7일(현지시간) 새벽 하마스의 기습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은 7일 차에 접어들면서 수많은 사상자를 낳았습니다. 12일 기준 이스라엘 측 사망자는 1300여 명, 부상자는 3200여 명으로 집계됐고, 팔레스타인 보건부에 따르면 이날 가자지구에서만 어린이 447명과 248명의 여성을 포함해 1417명이 숨졌습니다. 서안지구에서 발생한 사망자 31명을 더하면 총 1448명입니다. 팔레스타인 측 전체 부상자는 6868명으로 파악됐습니다. 양측을 합하면 사상자 규모는 1만 명을 훌쩍 넘겼습니다.

이스라엘군이 조만간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이스라엘군은 13일 가자지구 중심도시인 가자시티 주민에게 전원 대피령을 내렸습니다. 하마스가 붙잡은 인질 등까지 고려한다면 향후 사상자는 더 늘어날 예정입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국 대학가에선 양측의 교전과 관련해 갑론을박이 일었습니다. 하버드대 35개 학생 단체가 7일 ‘이스라엘 정권이 이번 폭력 사태에 전적인 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성명을 낸 데 따른 건데요. 미국은 이스라엘의 강력한 동맹국입니다. 게다가 최근 하마스가 영유아를 참수했다는 등 끔찍한 소문이 전해지는 등 인도주의적 위기가 높아지고 있는데, 하버드대 일부 학생들이 하마스가 아닌 이스라엘에 비판의 목소리를 낸 거죠.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9일(현지시간) 불길이 치솟고 있다. 가자(팔레스타인)/EPA연합뉴스

이에 학교 안팎에서는 큰 비판 여론이 일었습니다. 비판이 거세지자 당초 성명에 서명한 34개의 모임 중 4개 모임은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입장을 철회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하버드대의 서남아시아 학생 모임의 경우, 성명을 통해 “성명에 동참한 사실에 대해 공식으로 사과한다”며 “테러 조직 하마스의 학살을 강력하게 비난한다”고 황급히 해명에 나섰습니다. 또한 다른 학생 모임의 일부 임원들은 이스라엘 비난 성명에 거리를 두기 위해 사퇴를 발표했다고 합니다.

이 같은 입장 변경은 하버드생들이 졸업 후 직장으로 선호하는 월스트리트의 싸늘한 분위기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최근 헤지펀드계의 거물인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 캐피털 회장은 이스라엘 비난 성명에 서명한 하버드대 학생 모임이 월스트리트의 ‘취업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사실을 공개했죠. 취업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입장을 철회했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한국 대학가에서도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나왔는데요. 캠퍼스 내부 게시판에는 성명서가 붙었고, 이 성명서에는 “팔레스타인에 연대와 지지를 보내자” 등의 문구가 담겨 눈길을 끌었습니다.

▲13일 오후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내 게시판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무력 충돌과 관련한 팔레스타인 지지 성명서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동자연대 청년학생그룹 “하마스 공격, 이스라엘 학살에 맞선 정당한 저항” 주장

12일(한국시간) 대학가에 따르면 고려대, 명지대, 서울대, 서울시립대, 연세대, 한국외대, 홍익대 등 캠퍼스 내 게시판에는 ‘노동자연대 청년학생그룹’ 이름으로 팔레스타인 지지 성명서가 붙었습니다.

노동자연대 청년학생그룹은 성명서에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을 대대적으로 학살·추방하는 인종청소를 통해 1948년 건국됐고, 인종차별적인 인종분리 정책을 줄곧 고수해왔다”며 “하마스의 공격은 이스라엘의 공격·학살에 맞선 정당한 저항”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성명서에는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든 팔레스타인인들의 정당한 권리”, “하마스의 공격은 최근 더 심화하던 이스라엘의 만행에 대한 대응”이라는 내용도 담겼는데요. 이들은 하마스를 “팔레스타인 전사”라고 지칭하면서 “팔레스타인 저항의 화살은 억압국가 이스라엘과 이를 후원하는 서방 제국주의를 향하고 있다. 한국 청년학생들도 팔레스타인에 연대와 지지를 보내자”고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성명서를 접한 학생들의 의견은 분분합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역사적 배경이 복잡한 만큼 교전의 책임을 함부로 규정할 수 없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이는가 하면, 하마스와 같은 테러 단체는 어떤 방식으로도 용납할 수 없다며 거센 비판을 내놓기도 했죠. 일부 학생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중 어느 쪽을 지지하는 것이 옳은지를 놓고 논쟁하는 것에서 나아가 서로의 정치적 신념을 비난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8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다. (AP/뉴시스)

이스라엘 vs 팔레스타인, ‘100년 갈등’ 이유는…민족·종교·영토 얽힌 복잡한 역사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은 민족과 종교, 영토 등 다양한 문제가 복잡히 얽힌 데에서 비롯됐습니다. 이런 만큼 양측 갈등에 대한 분석도 분분한 상황이죠.

지금의 이스라엘 땅은 과거 오스만 제국 자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대부분의 아랍 영토를 지배하고 있었는데요.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하면서, 아라비아반도 북부에서 튀르키예 동부에 이르는 영토가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분할 점령됐습니다.

그곳에 살고 있던 이들은 대부분이 아랍인이었고, 소수의 유대인도 있었습니다. 19세기, 유럽의 반유대주의 정서에 분노한 유대인들은 시온(예루살렘의 한 언덕)의 땅에 본인들의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영국은 이들에게 1917년 ‘유대인 국가 건설’을 약속했고, 이 밸푸어 선언을 토대로 유대인들은 본격적으로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주를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영국이 동시에 또 다른 협정을 체결했다는 겁니다. 같은 지역에 아랍 민족의 독립 국가를 약속하는 후세인-맥마흔 협정이었는데요. 앞서 영국-프랑스의 분할 점령까지 따진다면 영국은 서로 모순되는 세 개의 계약을 맺은 셈입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계약을 이중, 혹은 삼중 사기 계약이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협정 문제를 떠안은 유엔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두 개의 국가 건설을 보장하는 결의를 하게 됩니다. 이는 결국 팔레스타인인 입장에서는 삶의 터전을 갑자기 빼앗기게 된 것이고,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온전한 영토를 보장받지 못하게 된 건데요. 양국의 본격적인 분쟁도 1947년 유엔 결정 이후 시작됐습니다. 이듬해인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동시에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등 5개국 아랍 연합군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며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했죠. 이후 전쟁 규모의 대규모 충돌만 1956년, 1967년, 1973년 등 4차례 일어났습니다.

▲10일(현지시간) 가자지구 상공에서 로켓이 이스라엘을 향해 발사되고 있다. (신화/뉴시스)

하마스, 팔레스타인엔 ‘투쟁’이자 이스라엘엔 ‘테러’…정착민 식민주의 지적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본격적인 영토 분쟁은 75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1세기경 로마제국의 식민지 처지를 벗어나기 위한 독립 전쟁에서 진 뒤 유랑민으로 떠돌았다는 걸 감안하면, 2000년가량 영토에 대한 설움이 누적된 셈입니다.

이번 전쟁에서 명확한 가해자나 피해자를 규정할 수 없는 것도 이처럼 길고 복잡한 역사 때문입니다. 하마스만 보더라도 팔레스타인 입장에선 영토를 되찾기 위한 ‘투쟁 단체’고,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가자지구를 무단 점령한 ‘테러 단체’입니다.

일각에서는 두 국가가 아닌, 제3의 세력 개입을 분쟁의 시초로 분석하기도 합니다. 저명한 중동 문제 전문가이자 역사학자인 라시드 할리디 박사는 저서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을 통해 지난 100년에 걸쳐 강대국들의 입김이 어떻게 팔레스타인의 불행을 낳았는지 설명하는데요.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인 그가 일관되게 비판하는 부분은 ‘정착민 식민주의’입니다.

할리디 박사는 오랫동안 서구 사회에서 살아왔던 유대인들이 강대국들의 강력한 지원 아래 팔레스타인 원주민과 그 후손들의 땅을 차지하고, 그 지역에 대한 배타적인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 100년간 긴 전쟁을 벌인 걸 오늘날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기원이자 본질로 분석합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이주한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원주민, 이 양쪽 후손들이 동등한 조건 아래에서 정당한 경쟁을 벌인 게 아니라 유대인과 외세의 유착이 낳은 결과라는 겁니다.

그가 거론한 강대국은 이중 협약을 통해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의 독립적인 건설을 보장한 20세기 전반부의 영국, 또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의 미국을 뜻합니다.

▲12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북부 마을 키랴트 티본에서 열린 다니엘 발드만과 노암 샤이 부부의 장례식에서 추모객들이 눈물 흘리고 있다. 이 부부는 7일 하마스에 의해 살해됐다. (AP/뉴시스)

하마스, 영유아 포함한 민간인 집단 학살 계획했나…인도주의적 위기 ↑

다만, 양측의 교전이 길어지면서 복잡한 역사와는 별개로 잔혹한 행위를 규탄하는 국제 사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1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하마스 대원의 시신에서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한 작전 문서를 이스라엘군이 찾아냈다고 보도했는데요. 매체가 이 문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하마스는 사전에 철저하게 정보를 수집했으며 처음부터 민간인을 학살하고 납치할 목적으로 이스라엘에 침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WSJ은 “해당 문서에는 이스라엘의 상세한 지도뿐 아니라 민간인 마을에 대한 침투 경로, 이스라엘군의 위치, 이스라엘 주력 전차의 약점과 공략법까지 담겨 있다”고 전했는데요. 이스라엘군 정보장교 출신인 마이클 밀슈타인 텔아비브대학 팔레스타인연구포럼 책임자는 “하마스는 표적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며 “이렇게까지 주도면밀하게 준비된 공격은 유례가 없었을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또 이 문서에는 다른 대원들이 지원 사격을 하는 동안 공격조가 보안 울타리에 구멍을 내고 침투한 뒤, 인질들을 사로잡아 향후 ‘협상’에 활용한다는 계획이 적혀 있었다고 WSJ는 덧붙였습니다.

하마스가 영유아를 포함한 민간인을 잔혹하게 집단 학살하는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해당 문서가 등장하면서, 이번 교전을 바라보는 국제 사회의 우려도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