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근 칼럼] ‘기촉법’ 일몰, 패자부활전 없앤 최악수

입력 2023-10-1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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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기업 되살린 워크아웃제
성과 큰데 일몰은 ‘정치적 배임’
기업 부활 돕는게 구조조정 취지

위기에 몰린 기업의 구조조정을 위한 워크아웃제도의 근거가 되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이 15일 일몰됐다. 재입법이 이뤄지지 않으면 벼랑 끝에 몰린 기업은 워크아웃을 신청할 수 없고 법정관리를 거칠 수밖에 없다.

기촉법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기업이 줄도산하자 법원에 의한 법정관리 대신 민간주도의 안정적인 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해 2001년 제정됐다. 기촉법 제정으로 ‘채권단의 75%’ 동의만으로도 채권단 주도의 기업 구조조정 절차인 워크아웃에 들어갈 수 있었다. 기촉법에 힘입어 현대건설과 하이닉스 등 주요 기업의 정상화가 이뤄졌다. 기촉법이 일몰까지 5차례나 연장된 데에는 그만한 ‘제도익(制度益)’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촉법이 일몰됨에 따라 이제는 벼랑 끝에 몰린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은 법정관리밖에 없게 됐다. 법정관리와 비교해 워크아웃은 장점이 많다.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되면 협력업체, 일반 상거래채권자의 모든 채권·채무가 동결되어 수주계약 해지 사유가 발생하고 신용장 거래 중단으로 자금줄이 막힌다. 결국 기업에 ‘낙인효과’가 나타나고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게 된다. 하지만 워크아웃은 채권자의 신규 자금 지원이 가능하고 기업의 상거래 채권을 보존해주기 때문에 영업력을 유지할 수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워크아웃의 성공률은 34.1%로 법정관리 12.1%에 비해 훨씬 높고, 정상화에 걸리는 기간도 워크아웃이 3.5년으로 통상 10년 걸리는 법정관리보다 짧다. 높은 구조조정 성과를 보이는 기촉법을 일몰처리한 것은 ‘사회적 자해행위’이다.

한국의 정치는 극단적 정쟁으로 시계(視界) 제로다. 그 일례로 35년 만에 대법원장 공백 사태를 맞고 있다. 그동안 대법원장 임명 동의안이 부결되지 않은 이유는, 최소한 “대법원장 임명은 정치와는 거리를 둬야 한다”는 마지노선이 지켜졌기 때문이다. 공백사태에 대해 ‘개인적 사법 리스크 방탄’을 위한 의회 테러라는 비난이 이는 이유다. 멀쩡한 ‘정책 선택지’를 불구로 만든 기촉법 일몰 처리는 ‘정치권의 배임’이 아닐 수 없다. 안전운임제 ‘일몰폐지’를 위해 화물연대가 벌인 파업을 기업인도 벌여야 정치권이 기촉법 연장에 관심을 갖는 게 아닌가 싶다. 정책은 진공 속에서 시행되지 않는다. 정책에는 맥락이 있기 마련이다. 당장 올해 한국 경제의 예상성장률은 ‘1% 초반대’다. 미국의 서브프라임발 금융위기가 발발한 2008년을 제외하고 ‘2% 이하’의 성장률을 기록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위기의식이 없다.

한국 경제는 미증유의 위기상황에 놓여있다. 세계적으로 장기적인 ‘고금리 시대’가 도래한 가운데, 대한민국의 경제주체 가계·기업·정부가 부채 압박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IMF의 ‘세계 부채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부채 비율은 가계부채 108.1%, 기업부채 173.6%로 총 281.7%다. 238.9%였던 2017년과 비교하면 5년 만에 부채가 42.8% 증가해, 데이터 확인이 가능한 26개국 중 가장 큰 증가폭을 기록했다.

기업부채도 크게 증가했다. GDP 대비 비금융 기업부채 비율은 2017년 147.0%에서 지난해 173.6%로 26.6% 증가했다. 기업부채는 가계부채와 달리 시설투자자금으로 쓰일 수 있지만 기업환경이 나빠지면 사정은 달라진다. 투자기회가 소진되고 현금창출능력이 저하되면, 부채는 짐이 된다. 한국의 외환위기도 따지고 보면 기업의 ‘저효율+고부채’에 기인한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신용위험평가 결과 부실징후기업으로 분류된 업체는 185개로 전년(160개)보다 25개 증가했다. 1997년 IMF 위기상황이 재연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을 떨칠 수 없다. 고금리·고물가 등 경기 여건 악화로 한계상황에 몰린 기업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기촉법 일몰’은 치명적인 패착이 아닐 수 없다.

경제는 기업 생태계이다. 흥하는 기업과 쇠몰하는 기업이 공존한다. 쇠몰하는 기업을 경쟁력이 없다고 도산시키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산업의 트렌드가 바뀌면서 일시적으로 경쟁력을 잃은 기업이 부활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구조조정인 것이다. 민간주도의 자율적 구조조정 프로그램인 워크아웃제도를 질식시키는 ‘기촉법 일몰’은 대한민국 경제를 침몰시키는 패착 그 자체다. 패자부활전은 상시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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