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정원 확대…필수의료 해결 한목소리, 해법 우선순위 입장차

입력 2023-10-18 12:54 수정 2023-10-18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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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국회·시민단체 모두 의대 정원 확대 찬성, 의료계만 반대

▲15일 서울의 한 의과대학. (연합뉴스)
▲15일 서울의 한 의과대학. (연합뉴스)

정부가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등 의료 현안 개선을 위한 카드로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추진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의료계 등에선 필수의료 문제 해결, 처우개선, 의료수가 인상 등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를 비롯한 의료계에선 필수의료 문제 해결이 시급한 과제는 맞지만, 수가를 높이고 의료진 처우 개선이 선결돼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18일 정부 관계자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정부는 19일 발표할 예정이었던 의대 정원 확대 발표를 다음주로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확대 폭과 방식 등에 대해 의료계와 좀 더 협의할 필요하단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다만, 일정 수준 이상의 정원 확대는 이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우리나라 의대 정원은 2000년 의약분업 과정에서 의료계 요청에 따라 당시 3507명이었던 정원을 줄여 2006년부터 3058명을 유지해 오고 있다. 이후 서울·수도권 의료진 쏠림과 공공의료 및 필수의료 분야 의료진 부족 등의 문제가 불거지며 의사 인력 확대 목소리가 이어져 왔다.

정원 확대와 관련 정부 의지는 강력하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17일 오후 열린 의사인력 전문위원회에서 “어느 때보다 의사 인력 증원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크고 사회적 열망이 높은 상황이다. 의사 수 증원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면서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의협과) 10개월간 논의에서도 의대 정원 규모 논의는 진전되지 않았다. 과학적 통계 기반 수급 전망에 따른 의료인력 확충과 함께 추진할 정책 패키지 논의를 위해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시해달라”고 밝혔다.

앞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 시민단체는 의대 정원 확대를 꾸준히 요구해왔다. 경실련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기존 의대에 정원을 늘리는 방식으로는 공공의료 공백이 심각한 의료취약지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며 “권역별 공공의대를 신설하고, 1000명 이상의 의대 정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에 훨씬 못 미치는 만큼, 의대 정원 확대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윤 서울대의과대학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우리나라 인구 10만 명당 의대 졸업생은 OECD 국가 평균의 55% 수준”이라며 “OECD 국가 의사 수와 격차가 더 벌어지지 않도록 하려면 의대 정원을 2535명 늘려야 한다. 30년 후 OECD 평균에 도달하려면 5500명, 60년 후 OECD 평균에 도달하려면 3500명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의사 부족에 의사 임금도 평균 임금에 비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김 교수는 의사 인력 공급이 늘면, 인건비가 감소해 진료비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계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의협은 17일 저녁 ‘긴급 의료계 대표자 대회’를 열고, 일방적인 발표 강행에 투쟁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이필수 의협 회장은 “2020년 9·4 의정합의 정신을 위반하고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를 강행한다면 3년 전 보다 강력한 투쟁에 돌입할 수 밖에 없다”며 “무너져가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 각종 대책을 제시하며 적극 정부와 협력해왔다. 이러한 의료계의 신뢰와 노력을 기만하고 정부에서 의료계와 충분한 논의와 합의 없이 독단적으로 결정한다면 9·4 의정합의를 명백히 파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한의사협회는 17일 긴급 의료계 대표자 회의를 열고, 정부의 일방적인 의대 정원 확대에 강경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제공=대한의사협회)
▲대한의사협회는 17일 긴급 의료계 대표자 회의를 열고, 정부의 일방적인 의대 정원 확대에 강경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제공=대한의사협회)

의협은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붕괴 근본 원인을 의사 인력 부족이 아닌 열악한 환경이라고 지적한다. 노력 대비 보상이 낮은 필수의료 분야의 수가를 높이는 등 의료진 처우 개선이 이뤄지는 것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또 갑작스러운 의대 정원 확대는 의과대학 부실 교육으로 인한 의료 질 저하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병원계에서는 의대 정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의약분업 당시 정원이 감소한 만큼 다시 증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 병원계 관계자는 “의사를 채용하기 어려운 중소병원에선 의대정원 확대가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원 확대에 힘을 싣고 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7일 국정감사 사전대책회의에서 “의대 정원 확대는 더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노인 인구가 크게 늘어 의료 수요가 폭증하고 있고, 응급실 뺑뺑이 사망사고는 반복된다. 의사단체에서 주장하는 ‘문제는 인원이 아니라 배치다’도 일리가 있지만 일단 의사 숫자가 지금보다 많아져야 지방의료와 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17일 열린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소아과, 산부인과, 흉부외과 등에서는 의사 수가 절대 부족하다. 지역의 우수한 의사와 병원이 없어 새벽마다 KTX 열차를 타고 상경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의원은 “민주당의 해법은 의대 정원 확대와 함께 공공의료 인력 양성을 위해 공공의대인 국립보건의료전문대학원 설치, 지역에서 근무할 지역의사제와 함께 이뤄져야 한다. 모처럼 윤석열 정부가 좋은 정책을 발표해 여야 모두 찬성하니 국민과 미래를 위해 더 좋은 의료인력 확보를 위한 정책 협의에 나서달라”고 말했다.

현재 의대 정원 확대 폭이나 방식과 관련 △의약분업 당시 줄어든 351명 정원 되살리기 △500~1000명 확대 △3000명 확대 등 다양한 안이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영 시기는 현재 고등학교 2학년이 응시할 2025년도 입시가 될 전망이다.

정부와 국회, 시민단체 모두 의대 정원 확대를 찬성하고 있는 가운데 의료계는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며 ‘강경 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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