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보고 싶다’ 6번 찾아온 전 남편…대법 “스토킹범죄”

입력 2023-10-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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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감‧공포심’ 일으킨 스토킹행위 판단방법 최초 판시

스토킹 범죄는 침해범 아닌 ‘위험범’
법익침해 위험 야기만으로 범죄성립

“비교적 경미한 수준 개별 행위라도
‘누적적‧포괄적’으로 평가하면 충분”

자녀들이 보고 싶다는 이유로 이혼한 전처가 거주하는 주거지에 수차례 찾아가 불러내는 행위가 스토킹 범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비교적 경미한 수준의 개별 행위더라도 ‘누적적‧포괄적’으로 평가했을 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일련의 스토킹 행위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한 최초 사안이다.

(그래픽 = 손미경 기자 sssmk@)
(그래픽 = 손미경 기자 sssmk@)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피고인이 피해자와 자녀들에게 수차례 접근해 반복된 스토킹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스토킹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에서,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하고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 판결(징역 10월)을 확정했다고 20일 밝혔다.

피고인은 피해자(여‧33)와 2009년 12월 결혼해 네 자녀들을 뒀다. 피해자는 2017년 11월 피고인과 이혼한 후 혼자 자녀들을 양육해오다 2021년 3월께 피고인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하고 피고인을 상대로 본인 및 자녀들에 대한 접근금지명령을 신청하는 등 피고인을 만나는 것에 대해 공포심을 갖고 있었다.

피고인은 지난해 10월 15일 오전 11시56분께 충남 소재 피해자의 주거지에 찾아가 피해자 의사에 반해 현관문 앞에서 피해자 및 자녀들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등의 방법으로 피해자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켰다. 이 때부터 같은 해 11월 18일까지 총 6회에 걸쳐 같은 방법으로 피해자와 자녀들을 기다리거나 문을 열어달라고 소리치는 등의 방법으로 접근했다. 이에 피고인은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스토킹 행위를 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에서는 스토킹 범죄 성립을 위해 상대방의 현실적인 불안감 또는 공포심이 요구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아울러 개별 스토킹 행위가 객관적·일반적 관점에서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정도인지 판단하는 기준이 문제됐다.

1심은 스토킹 범죄에 관한 유죄를 인정해 징역 1년에 이수명령 40시간을 선고했다. 1심 법원은 각 행위가 모두 피해자에게 현실적 불안감‧공포감을 일으켰을 것으로 봤다. 스토킹 범죄가 침해범에 해당한다고 보더라도 유죄라는 취지다.

2심은 스토킹처벌법이 정의하는 스토킹 행위는 침해범이 아닌 ‘위험범’으로 해석하면서 1심 판결을 파기했다. 하지만 여전히 유죄라는 판단을 유지해 징역 10월, 이수명령 40시간을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상대방이 현실적으로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켰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스토킹 행위에 해당하고, 그러한 스토킹 행위를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하면 스토킹 범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 서울 서초동 대법원. (뉴시스)
▲ 서울 서초동 대법원. (뉴시스)

침해범이란 보호법익이 현실적으로 침해될 것을 요구하는 범죄를 말한다. 예컨대 살인, 상해 등의 범죄가 침해범에 해당한다. 위험범은 보호법익에 대한 위험의 야기만으로 성립되는 범죄를 일컫는다.

대법원은 스토킹 범죄의 성립을 위해 피해자가 현실적으로 불안감 내지 공포심을 일으킬 것을 요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스토킹 범죄는 침해범이 아닌 위험범이라는 입장이다.

대법원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정도라고 평가될 수 있다면 현실적으로 상대방이 불안감 내지 공포심을 갖게 됐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스토킹 행위’에 해당하고, 나아가 그와 같은 일련의 스토킹 행위가 지속되거나 반복되면 ‘스토킹 범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했다.

단기간에 반복된 나머지 행위와 누적적‧포괄적으로 평가해 피해자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일련의 행위로 보인다면, 이를 일련의 ‘스토킹 행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있고, 그 후 또다시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스토킹 행위가 반복됐다면 결국 전체 행위가 포괄하여 스토킹 범죄를 구성한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박일경 기자 ek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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