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건보공단, 불법병원 특사경 도입 재추진…"연 2000억원 누수 차단"

입력 2023-11-0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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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장기화에 불법개설 기관 부정수급 3조4000억 원 중 2000억 원만 환수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지난달 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정 이사장은 특별사법경찰권 도입을 통해 불법개설 의료기관 등 부정수급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뉴시스)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지난달 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정 이사장은 특별사법경찰권 도입을 통해 불법개설 의료기관 등 부정수급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뉴시스)

국민건강보험공단(이사장 정기석)이 불법개설 의료기관·약국(일명 사무장 병원·약국, 이하 불법개설 기관)에 대한 특별사법경찰권(특사경) 도입을 재추진한다.

건보공단 특사경 도입은 전 정부에서도 추진됐으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막혀 무산됐다. 현 정부에서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이 같은 내용으로 발의한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할 자와 그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사법경찰직무법)’ 개정안도 소관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정기석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지난달 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특사경을 꼭 도입하고 싶다”며 “이번 회기에 법안이 처리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 달라”고 요청했다.

건보공단 특사경은 의료기관·약국 불법개설에 따른 국민 건강권 침해와 재정 누수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 중 하나다. 현행 ‘의료법’상 의료인·약사가 아니면 의료기관·약국을 개설할 수 없다. 불법개설 기관의 대표적인 유형은 의료인·약사가 아닌 사람이 의료인·약사의 명의를 빌려 기관을 개설하는 경우다. 애초에 사익 추구를 위해 문을 연 기관이기에 과잉진료, 과잉처방 등 문제가 빈번하다. 사망자 47명, 부상자 112명을 낸 밀양세종병원도 불법개설 기관이다.

불법개설 기관의 병폐는 지표에서도 나타난다. 공단에 따르면, 불법개설 의원의 병상 운영비율은 44.3%로 일반 의원보다 14.3%포인트(P) 높고, 입원환자 비율은 3.7%로 일반 의원(1.5%)의 두 배를 넘는다. 또 봉직의 이직이 잦아 6개월 미만 근무 비율이 47.9%에 달하고, 70세 이상 대표자 비중은 21.6%로 일반 기관(5.5%)의 4배에 육박한다.

재정 누수도 심각하다. 2009년 이후 올해 6월까지 불법개설 의료기관·약국에 부정하게 지출된 건강보험 급여(환수결정액 기준)는 총 3조4275억9500만 원에 달한다.

(자료=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국민건강보험공단)

가장 큰 문제는 수사 장기화로 증거 확보, 부정 급액 환수가 어렵단 점이다. 현재 불법개설 기관에 대한 수사는 경찰과 복지부 특사경, 지방자치단체 특사경이 담당하고 있다. 경찰에선 보건의료 전문 수사인력 부족과 강력범죄 우선 수사 등으로 수사 의뢰 후 결과 확보까지 평균 11.8개월이 걸린다. 복지부 특사경은 인력이 2명에 불과하며, 불법개설 약국에 대해선 수사권이 없다. 지자체 특사경은 잦은 인사이동으로 수사 경험이 적고, 전문성이 부족하다.

수사가 지연될수록 증거 확보도 어려워진다. 2017년부터 올해 6월까지 진행된 불법개설 기관에 대한 사해행위취소 소송 211건 중 26건은 공단이 패소했다. 2021년에는 41건의 소송 중 8건에서 졌다. 2013년 5월부터 2018년 4월까지 약사인 타인 명의로 약국을 개설한 약품회사 대표도 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 총 3512만2070원을 받았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됐다.

승소로 환수가 결정돼도 문제다. 2009년 이후 환수결정액 3조4275억9500만 원 중 공단이 환수한 급여는 6.7%인 2282억300만 원에 불과하다. 수사 장기화로 부당 수급액이 은닉돼서다.

(자료=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국민건강보험공단)

공단은 의료‧수사‧법률 전문인력 풀이 넓다. 공단은 불법개설 의료기관·약국에 대한 특사경 도입 시 수사 기간을 3개월 이내로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불법개설 기관에 대한 신속한 수사가 이뤄지면 증거 확보, 계좌 동결이 용이해져 환수율도 높아질 전망이다.

의료계는 특사경 도입 시 수사권 오·남용을 우려하고 있으나, 공단은 특사경 수사권이 법률로 제한되므로 오·남용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공단 관계자는 “일부 의료계에서 우려하는 진료비 착오나 거짓 청구에 대한 확대 수사는 현행법 체계상 수사가 불가하다”며 “공단 특사경의 수사 범위는 ‘사무장병원과 면허대여약국’에 한해 법제화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또 “보건복지부 장관이 공단 특사경 추천권을 행사하고, 검찰에서 수사권한이 승인된 직원에 한해 제한적으로 운영될 예정”이라며 “의료기관에 대한 경찰력 비대화 및 상시 감시·통제 초래에 대한 의료계의 우려를 불식할 수 있도록 수사권 오·남용을 방지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장기적으론 의료기관·약국 불법개설 감소도 기대할 수 있다. 신속한 수사 착수·종결로 의료기관·약국 불법개설의 기대이익이 감소하고, 그 결과로 불법개설 기관이 줄면 연간 2000억 원 규모의 건강보험 재정 누수가 차단된다. 궁극적으로 국민의 건강권이 보호된다.

공단은 특사경 도입을 전제로 “불법개설 기관 등 근절로 확보된 재정은 수가 인상과 급여 범위 확대 재원으로 의약계 수익 증대와 보장성 확대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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