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로] 자사주 매입에 102조원 쓴 애플

입력 2023-11-1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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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실적 빠지자 주가관리 나서
LG엔솔 시가총액과 맞먹는 액수
주당순이익 늘려 주주가치 제고

많은 투자자가 기업의 손익계산서를 볼 때 매출액과 영업이익을 중점적으로 살펴보는 편이다. 영업이익 아랫단에 나오는 영업외수익과 비용은 말 그대로 영업 외적인 부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중요성이 떨어진다고 본다. 그래서 영업외수익과 비용이 반영된 당기순이익보다는 영업이익이 큰 관심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기업 입장에서도 잠정실적을 발표할 때 매출액과 영업이익만 우선 공시한다.

그런데 미국 기업들은 실적 공시 보도자료를 낼 때 주당순이익(EPS: Earnings Per Share) 정보를 강조한다. 미국 주식시장에서도 기업의 주당순이익이 컨센서스를 상회했다, 하회했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그만큼 영업이익 아랫단에 나오는 영업외수익과 비용이 포함된 순이익이 중요하다는 것처럼 보인다. 정말 그 취지일까

그렇지 않다. 미국 기업도 당연히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매우 중요하다. 영업이익 아랫단에서 큰 숫자의 일회성 영업외수익, 비용이 발생하면 순이익이 급격하게 변할 수 있어서 분석에 주의가 요구된다. 그런데도 주당순이익을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주주가치 제고 노력을 많이 해서 이 부분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주당순이익은 손익계산서의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당기순이익을 주식 수로 나누어 계산하는데 미국 시가총액 1위 기업 애플을 예로 들어보자. 애플의 결산일은 매년 9월 마지막 주 토요일이다. 그래서 올해의 회계 기간을 9월 30일에 마감했고 11월 3일에 연차보고서를 공시했다. 애플의 손익계산서에 의하면 매출과 당기순이익 모두 2022년보다 3%씩 감소했다고 한다. 5G폰이 본격적으로 판매된 2021년과 2022년에 눈부신 성장을 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정점을 지났기 때문에 매출이 둔화하고 있다. 이는 LTE폰이 처음 나왔던 때에 성장했다가 그 이후 정체기에 빠졌던 과거 흐름과 유사하다.

그렇다고 애플의 주가가 급락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애플은 실적이 악화되어도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애플의 2023년 연차보고서를 보면 한 해 동안 자사주를 취득해서 소각하느라 쓴 돈이 776억 달러(102조 원)이다. 102조 원은 LG에너지솔루션의 시가총액과 맞먹는 돈이다. 이 돈으로 주식시장에서 애플의 주식을 사서 다 소각시켜 버렸다. 무모한 짓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애플 경영진은 매년 100조 원 이상을 풀어서 주식을 매입해 소각한다. 이렇게 해서 유통 주식 수를 줄이는 것인데 2023년에는 3억 주를 매입 소각해 애플의 주식 수는 156억 주가 되었다. 회사는 당기순이익이 감소해도 주식 수를 줄였기 때문에 주당순이익은 증가할 수 있다. 실제로 애플의 2023년 주당순이익은 6.16달러로 2022년 대비 0.1달러 증가했다. 순이익 총액은 줄었지만 주당 주주 몫은 오히려 소폭 늘었다.

이런 대규모의 자사주 매입은 애플뿐만 아니고 미국 대부분의 기업이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매년 하고 있다. 국내 주식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매우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업들이 실적이 주춤해도 주가 방어에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주가가 올라가면 최대주주가 2세에게 주식을 상속이나 증여할 때 납부할 세금이 많아져서 주주가치 제고에 소홀하다는 평이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상속세를 줄여야 한다는 얘기도 한다. 미국도 상속세 부담이 큰 국가인데 가족이 승계해서 경영하는 상장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많은 뮤추얼펀드가 미국 기업들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기업의 이사회가 중요 의사결정을 해서 권한과 책임이 매우 강하고 오로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서만 행동을 한다. 그래서 매년 좋은 실적을 내는 것이고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 지급에 적극적이다. 이러니 좋은 주가 흐름이 저절로 따라올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지금 극심한 경제불황과 세수 부족까지 겪고 있어서 상속세를 손대는 것은 매우 부담스럽다. 그보다 지금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가치 제고에 더욱 힘쓸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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