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마약과의 전쟁’ 최전방에서 분전(奮戰) 중인 한 마약 수사관은 “크리스마스 송년 분위기에 긴장감이 느슨해지는 게 가장 우려스럽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대검찰청·관세청·경찰청·해양경찰청·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가정보원·법무부·보건복지부·식품의약품안전처·교육부·외교부·여성가족부·방송통신위원회….
1년 넘게 이어진 마약과의 전쟁에 투입된 정부 부처들이다. 범정부 차원 강력 대응에도 올 1월부터 9월까지 마약류 사범 단속은 2만230명이다. 9개월 만에 작년 한 해 전체 마약사범(1만8395명) 보다 이미 2000명가량 많이 단속한 셈이다. 관련 통계를 작성한지 30년이 넘었는데, 2만 명 선이 뚫리기는 처음이다. 전년 동기(1만3708명) 대비 47.6% 폭증했다.
급기야 정부는 22일 ‘마약류 관리 종합대책’을 내놨다. 이번 대책은 △불법 마약류 집중 단속 △의료용 마약류 관리체계 개편 △치료‧재활‧예방 인프라 확충 등 크게 세 가지 틀로 이뤄졌다.
여기서 눈여겨 볼 부분이 ‘의료용 마약류 관리체계 개편’이다. 식약처에 따르면 의료기관 2곳 이상을 방문해 프로포폴을 처방받은 환자가 2019년 48만8000명 수준에서 지난해 67만6000명으로 4년 사이 약 40% 급증했다.
10대 청소년과 2030세대 공무원‧회사원을 가리지 않고 마약류가 우리 사회 곳곳에 침투했다. 의료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서울중앙지검 마약범죄 특별수사팀은 올해 6월 환자 1명에게 신종 합성마약 ‘펜타닐’ 패치 4800여 장을 처방해 준 의사를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4만 명 이상을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치사량에 해당한다.
특히 마약류 취급 의료인이 스스로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투약하는 속칭 ‘셀프 처방’ 사례마저 확인되고 있어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이 부각된 상황이다.
마약과의 전쟁 1년, 좀처럼 마약 범죄가 잡힐 기미가 없자 검찰이 의료용 마약류 불법 취급 행위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나섰다. 그동안 통제가 잘 됐던 향정신성 의약품 처방 및 관리 규제 영역 안에서 새로운 탈법들이 독버섯처럼 솟아나면서 결국 ‘의료인 면허 취소’라는 강경 카드를 빼들었다.
범정부 마약류 관리방안이 발표된 바로 다음날인 23일 대검은 의료인 마약 사건 가운데 의료인 자체가 마약류 중독자로 의심될 때는 반드시 마약류 중독 판별검사를 의뢰하도록 일선 검찰청에 지시했다.
대통령령으로 정한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 규정’ 제9조에 의하면 검사는 마약류 중독자 의심 자에 대해 치료보호 기관장에게 중독 판별검사를 의뢰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해당 의료인이 마약류 중독자로 판별되면 보건 당국이 의료법 규정에 따라 의료인의 면허를 취소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몰수한 마약류를 소각하는 장소를 일반에 공개하려는 검찰 계획이 서울시 반대로 백지화된 일이 있다. 대국민 경각심을 일깨우고자 낸 검찰의 고육지책이나, 몰수 마약이 폐기 처분되는 전(全) 과정과 폐기 현장 위치가 고스란히 노출된다는 보안상 문제가 불거졌다. 무엇이 과연 공익에 부합하는지에 관한 고민이었으리라. 마약과의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한 전쟁 영웅담을 듣게 될 날을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