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마찰 본격화 전보다 40% 급증
중국 대체 생산기지·미국 진출 거점 매력
6억 명 시장도 투자 유치 이점 작용
“중립지역 지위 활용…미·중 디커플링 혜택”
26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지난해 동남아시아 11개국에 대한 투자 금액은 2225억 달러(약 290조5850억 원)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 마찰이 본격화하기 전인 2017년 대비 40% 급증한 수치다.
미국과 중국이 앞다퉈 동남아시아에 대한 투자를 늘려간 영향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018~2022년 5년간 동남아에 대한 공장 건설 등 설비 투자 규모를 집계했을 때 미국과 중국이 각각 743억 달러, 685억 달러로 1·2위를 차지했다고 전했다. 미국은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서 반도체 관련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중국은 태국 전기차 공장 건설, 인도네시아 광산 개발 등에 힘을 쏟았다.
이러한 추세는 올해에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정부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 당시 “베트남은 반도체 공급망의 다양성과 탄력성을 확보할 수 있는 유망한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이에 화답하듯 마벨테크놀로지와 시놉시스 등 미국 반도체 기업들이 투자 의지를 내비쳤다. 세계 2위 반도체 패키징 업체인 미국 앰코테크놀로지는 16억 달러를 투자해 지난달 베트남 북부 박닌성에 신규 사업장을 준공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7월 중국 자동차 대기업 저장지리홀딩그룹이 서부 페라주에 100억 달러를 투자해 자동차 산업 거점을 만들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이 회사는 태국에서도 전기차 공장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기업이 동남아 투자에 열을 올리는 배경에는 미·중 간 패권 경쟁이 있다. 미국은 최근 공급망을 중국에서 동맹·우방국으로 이전하는 ‘프렌드쇼어링’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제3국으로 공장 등을 이전해 미국과 유럽 등으로의 수출을 원활하게 하려는 목적이 있다.
특히 동남아의 경우 제조업이 밀집한 중국과 거리가 가까워 공급망 재구축에 유리하다는 점이 투자 유인 요소가 됐다. 정치와 사회가 전반적으로 안정적이라는 점도 이점으로 작용했다. 6억 명 이상의 인구가 만들어내는 내수 수요 또한 매력적이다.
이소노 이쿠모 동아시아아세안경제연구센터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동남아가 ‘중립지역’이라는 지위를 활용해 미국과 중국의 디커플링(탈동조화)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중국이 동남아 국가들을 놓고 ‘눈치전’을 벌이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보 반 트엉 베트남 주석을 만나 “전통적 우호 관계라는 초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미국과 외교 관계를 최고 등급으로 격상하는 등 관계 강화에 나선 것에 대해 일침을 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