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이 줄을 왜 모으냐는 질문에 조카는 해맑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냥 재미있잖아요.” 사람은 이득도 손해도 되지 않는 무해한 일을 할 때 행복하다는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조카처럼 나는 마지막으로 무해한 일을 해본 적이 언제였는지 돌이켜보았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생산적이지 않은 일은 시간 낭비라 생각하면서, 정작 쉼이 필요할 때는 습관적으로 SNS와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낭비했다.
한 60대 여성이 인생에서 가장 잊고 싶지 않은 장면을 말했다. “편찮으신 어머니를 모시고 제주도로 여행을 간 적이 있어요. 좋아하시는 회를 잔뜩 사드리고 나서 생전 처음 노래방에 모시고 갔죠. “엄마 노래 한번 불러봐!” 하면서 마이크를 드렸더니 들어본 적도 없는 옛날 노래를 엄마가 막 심취해서 부르셨어요. 엄마는 돌아가시고 이제 없지만 아직도 그 장면이 눈에 선하고 그립네요. 대단한 기억보다는 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암투병을 하는 환자들은 기적이 일어난다면 특별한 순간보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하고 산책도 하며 무해한 일상을 보내고 또 가족들과 평범한 하루를 보내기를 바랬다.
무해한 것들은 소중하다. 무해한 행동들로 행복해진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마음을 내려놓으면 오히려 행복에 더 가까워진다. 목적 없는 순간들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무해한 것들은 큼지막한 바위가 아니라 자잘한 자갈과 같다. 자갈은 바위들 사이에 틈새를 메우며 삶을 단단하게 한다. 무해한 기억들이 많아야 기쁨이 무너지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삶을 살아낼 수 있다.
가끔 무해한 시간을 보내자. 사랑하는 이에게 좋은 음식, 좋은 것들을 사주겠다고 삶의 많은 부분을 허비하지 말자. 우리는 비싸고 화려한 레스토랑보다, 평범한 하루 속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음식을 나눴던 무해한 일상을 더 오래 기억한다. 또 소망한다.
강원남 행복한 죽음 웰다잉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