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노란봉투법'과 '방송 3법'에 대해 취임 이후 세번째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정국이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1일 이 위원장의 자진 사퇴로 불발된 가운데, 검사 2인에 대한 탄핵안은 이날 열린 본회의에서 단독 처리되면서 여야의 '강대강' 대치가 극에 달할 전망이다.
윤 대통령은 1일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에 대한 정부의 재의요구안을 재가하고 거부권을 행사했다. 앞서 정부는 이날 오전 임시 국무회의에서 해당 법안에 대한 재의요구안을 의결하고,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다. 국무회의를 주재한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번 개정안들이 과연 모든 근로자를 위한 것인지,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그간 정부는 여러 차례 개정안의 부작용·문제점을 설명했으나 충분한 논의 없이 국회에서 통과된 데 대해 매우 유감스럽고 안타깝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과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바꾸는 내용이 핵심인 '방송법·방송문화진흥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방송3법) 개정안'을 지난달 9일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했다.
한 총리는 노란봉투법에 대해 "개정안은 유독 노조에만 민법상 손해배상책임 원칙에 예외를 두는 특혜를 부여하고 있다"며 "이는 기업이 노조의 불법 파업으로 손해를 입어도 상응하는 책임을 묻기 어렵게 만들어 불법 파업을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방송3법에 대해선 "공영방송의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역할 정립보다는 지배구조 변경에 지나치게 편중돼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노란봉투법과 방송 3법은 4월 거부권 행사 이후 폐기된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5월 같은 절차를 밟고 폐기된 간호법 제정안에 이어 세 번째로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이 됐다.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은 국회가 의결해 보낸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 대통령이 해당 법률안을 국회로 돌려보내 재의를 요구할 수 있는 헌법상 권리다. 헌법 53조에 따르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이 다시 의결되려면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헌정질서 훼손"이라며 규탄에 나섰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오후 '윤석열 대통령 거부권 남발 규탄 및 민생법안 처리 촉구대회'에서 "방송장악을 위해서, 정권의 무능함과 독주를 감추기 위해서 국회가 의결한 법을 이렇게 함부로 내팽개쳐서야 되겠는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지금은 (대통령에게) 힘이 있어서 침묵할 수 있지만, 역사와 국민은 결코 이 사태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오늘은 헌정질서를 훼손한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야당인 민주당의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이날 이 위원장의 자진 사퇴로 불발됐다. 윤 대통령은 이 위원장의 사의를 수용해 면직안을 재가했다. 이 위원장은 "(탄핵)심판 결과가 나오기까지 몇 개월이 걸릴지 알 수가 없다"며 "그동안 방통위가 사실상 식물 상태가 되고 탄핵을 둘러싼 여야 공방 과정에서 국회가 전면 마비되는 상황은 제가 희생하더라도 피하는 것이 보직자의 도리"라고 사임 이유를 설명했다.
반면, 민주당이 함께 발의했던 검사 2인 탄핵소추안은 이날 본회의에서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의 불참 속에 단독 처리됐다. 현직 검사에 대한 탄핵 소추가 이뤄진 것은 지난 9월 민주당이 '검사 안동완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 헌정사상 두 번째다. 이에 따라 '고발사주'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손준성 검사장과 최근까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관련 사건의 수사 책임자였던 이정섭 차장검사는 곧바로 직무가 정지됐다.
한편, 예산안 또한 여야의 극한 대치로 심사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법정 기한인 2일을 넘기게 됐다. 국회법에 따르면 예결위는 매년 11월 30일까지 예산안 심사를 마쳐야 하고, 헌법은 국회가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인 2일까지 예산안을 의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회는 2021년과 지난해, 그리고 올해까지 3년 연속으로 법정 기한을 넘겨 예산안을 처리하게 됐다.
여야는 정기국회가 종료되는 다음 달 9일까지 예산안을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협상을 이어갈 전망이지만, 여러 쟁점에 대한 여야의 입장차가 상당해 합의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정부·여당은 내년도 예산안이 재정 건전화 기조 속에 적절히 마련됐다는 점을 강조하며 가급적 '원안 통과'를 주장하는 반면, 야당은 연구·개발(R&D),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새만금 예산 등의 증액을 주장하고 있다. 내년도 예산안이 올해 회계연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까지 처리되지 못할 경우엔 최소한의 예산을 전년도 예산에 준해 편성하는 '준예산' 사태도 발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