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청진기에서 들려온 소리

입력 2023-12-0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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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척추는 심하게 휘어있었다. 심한 척추만곡증으로 그의 등은 에스자 모양이었고 좌측은 심하게 앞으로 들어가 있었고 우측은 그만큼 뒤로 빠져 있었다. 등의 어느 부분도 편평한 곳이 없어서 청진기를 어디에 놓아도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몇 해 전 그는 아내를 잃었다. 그때 본 그의 등은 더 굴곡져 보였다. 나와 동갑인 그는 이제 홀로 딸과 아들을 키워내야 하는 인생의 쓸쓸하고도 외로운, 무겁고도 허전한 과제를 안고 있었다.

엄마가 떠나고 아들은 심각한 사춘기를 겪었다. 가출을 빈번히 일삼았다. ‘이 녀석이 또 집을 나갔는데 어디에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는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언젠가 아들이 감기로 진료실을 찾았다. 어느새 집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아이였는데 지금의 아이는 영 다른 아이 같았다. 나는 어느새 그의 심정과 동화되어 이 녀석을 어떻게 훈계해야 하나, 어떻게 따끔하게 혼내 줘서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하나, 진료는 뒷전이었다.

아이에게 ‘아빠 말씀 잘 들어야 한다, 아빠 혼자 너희 둘 키우시는 거 알면 이러면 안 된다’ 등 아들에게 할 잔소리를 쏟아내 볼까, 별생각을 다 하다 ‘잠을 푹 자야 한다, 약 잘 먹어라’ 하고 의사가 할 수 있는 말만 하고 돌려보냈다.

그 뒤론 그와 만나면 자식 걱정하는 걸로 시간을 보냈다. 틀어진 그의 어깨가 더 틀어져 보였고 지쳐 보였다. 한번은 병원을 찾은 그의 등에 청진기를 갖다 대고 들리지 않는 폐 소리를 애써 들으려 해 보았다. 그때 내가 들은 소리는 그의 폐음이 아니라 그의 한숨 소리였다. 어떻게 이 아이들을 키우나, 인생이 내는 한숨 소리…. 내 청진기는 한 곳에 멈춰 섰고 청진기를 든 내 손은 그의 등에서 멈췄다.그가 눈치를 챘는지 못 챘는지 알 순 없지만 나는 오십 대의 그를 위로하고 있었다. 잘 버티시고 있다고.

얼마 전 머리를 짧게 자른 그의 아들이 진료실로 들어왔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군대에 갔다고 했다. 휴가 중에 진료받으러 들렀다고 했다. 제대하면 뭐 할 거냐고 물었다. 공부해서 대학에 가 보겠다고 하는데 나도 모르게 ‘아이고 잘했네, 잘 생각했네’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 말이 사실인지 물론 제대하고 나서 지켜봐야 할 것이지만 그래도 정신을 차린 것 같아 내가 아빠인 것처럼 기뻤다.

조석현 누가광명의원 가정의학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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