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식 책임추궁은 마녀사냥…“명확성 원칙 바로잡고 중소업체 대응력 높여야” [중대재해 건설사의 냉가슴③]

입력 2023-12-1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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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대문구 이문동과 휘경동 일대 재개발 지구 터파기 공사 현장. (출처=연합뉴스)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과 휘경동 일대 재개발 지구 터파기 공사 현장. (출처=연합뉴스)

# 한 국내 건설현장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시행사 A가 시공사 B와 관계없이 별도로 인테리어업체에 발주를 내 공사를 진행하던 중 벌어진 일이다. 시공사B는 해당 공사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지만, '국토부의 사망사고 건설사 명단'을 통해 이름이 공개됐다. 사망사고 건설사 명단에는 이같은 세부적인 사고 경위가 함께 공개되지 않는다. 소비자들에게 시공사 B는 '사망사고 발생 기업'으로 낙인 찍힐 뿐이다.

건설업계는 사망사고 발생을 막기 위해 전사적 자원을 투입한다. 신규 채용을 통해 현장 안전관리 인력을 늘리고, 무선통신·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드론 등이 결합된 융복합 건설기술을 도입해 사고 예방에 만전을 기울인다.

하지만 부지불식간 발생하는 사고의 특성상, 이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때문에 덮어놓고 건설사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마녀사냥'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법령의 세부 손질이 요구된다. 아울러 소규모 건설사들이 안전역량을 키울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을 통해 중대재해처벌법의 시행 목적을 완성토록 보완할 필요가 있다.

14일 본지가 국토교통부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 3분기 중 100대 건설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자는 14개 사, 총 2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8명) 보다 2명 늘었다.

국토부는 사고 발생 업체와 관련해 관계기관 합동 특별점검을 실시하고, 사망사고가 반복된 건설사의 전국 현장에 대한 일제 감독에 들어간 상태다. 감독 과정에서 위법사항이 발견될 경우 부실벌점 부과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할 의사도 밝혔다.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은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공사금액 50억 원 이상)에서 노동자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 시 사고 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 등을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난 2022년 1월 27일 시행돼 법 적용 2년을 앞두고 있다.

법률 전문가들은 중처법의 취지와 필요성에는 적극 공감하면서도, 전적으로 원청(사업주)이 책임져야하는 구조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내놨다. 개인의 일탈이나 부주의에 의한 사고, 사업주가 사고방지 의무를 다했음에도 발생한 사고의 경우에도 원청이란 이유만으로 책임을 지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변호사는 "자기책임의 원칙에 따라 과실이나 고의가 있는 만큼 책임을 져야하는게 맞다. 하지만 사업주가 사전 조치 등 의무이행을 제대로 했음에도 작업자 개인의 과실 등으로 예상치 못하게 발생한 사고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올해 4월 선고된 첫 중처법 관련 판결을 보면, 법원은 산업재해치사 혐의 등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면서도 근로자 개인의 행동이 사고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단 점을 함께 밝혔다. 해당 사건을 담당한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형사4단독 김동원 판사는 "건설노동자 사이에서 만연한 안전 난간 임의적 철거 등의 관행도 사망사고의 원인이 됐을 수 있다. 책임을 모두 피고인에게만 돌리는 것은 가혹하다"고 했다.

▲서울 서초구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 서 있는 타워크레인들의 모습.  (출처=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 서 있는 타워크레인들의 모습. (출처=연합뉴스)

중처법을 둘러싼 위헌 논란도 있다. 중처법은 개정 시점부터 시행 이후까지 '명확성 원칙'과 '과잉금지의 원칙' 등에 대한 위헌 시비에 휘말렸다. 최근 이와 관련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이 기각됐지만,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행 법령에 명시된 용어의 구체성이 떨어지고 모호하단 이유에서다.

김영규 법무법인 대륙아주 파트너 변호사는 "제4조에 명시된 '실질적인 지배·운영·관리'란 용어 자체가 추상적이다. 안전보건 관련 법령은 동어반복적인 개념 규정만 돼 있어 실무에선 업종별로 구체화 예시 규정이 들어가야 실효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며 "합헌 여부를 떠나 명확성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법률이나 시행령 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내년 1월부터 적용될 상시 근로자 50인 미만(공사금액 50억 원 미만) 사업장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이들 건설업체들은 중처법 적용을 위한 준비를 미처 마치지 못한 상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내년부터 중처법 적용을 받는 중소 사업장 1053개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의 94%가 ‘중대재해법 적용 준비가 완료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준비를 완료하지 못한 기업의 87%는 ‘남은 기간 내에 이행 준비를 완료하기 어렵다’고도 답변했다.

실제 50인 이상의 현장을 다수 보유한 대형건설사들은 안전 역량 체계를 갖추기 위해 부단한 투자를 하고 있다. 돌발적인 사고나 위험 요소를 사전에 감지하고자 다양한 첨단 기술을 현장에 도입하고, 관련 기술의 연구·개발(R&D)도 꾸준히 진행해 상용화 절차도 밟는 중이다.

반면 소규모 건설사는 사정이 다르다. 안전역량 강화를 위한 투자를 하고 싶어도 자본 고갈, 인력 부족 등의 한계로 법이 요구하는 기준을 충족하기 어렵다. 내년 법 적용에 앞서 이들 기업의 안전역량을 실질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지원이 수반되는 게 절실한 이유다.

김영규 변호사는 "내년부터 현실적으로 준비가 부족한 소규모 사업장에 법이 적용되면 사업자들 대부분이 처벌 대상이 될 거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며 "법 적용 이전에 중소기업이 실질적인 안전 역량 체계 갖출 수 있도록 지원을 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지금부터라도 정부나 원청이 50인 미만 소기업의 안전 역량을 향상시킬 수 있게 실질적인 지원을 해주는 게 가장 급선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사망사고 100대 건설사 명단 공개방법도 손질이 필요하단 견해다. 해당 명단 공개가 경각심을 높이자는 취지이지, 망신을 주기 위한 목적이 아닌 탓이다. 원청의 귀책이 명확하지 않은 사례 등은 제외하는 방안을 고려하거나, 건설사가 운영 중인 현장의 규모와 갯수, 상세 사례 등 세부적인 내용을 포괄 공개하는 등 기준을 수정해 명확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10억 원 규모의 현장 10곳을 운영 중인 A사와 100억 대 현장 10개를 운영 중인 B사가 있다면, 사망자가 나올 확률 자체가 달라진다"며 "단순히 사망자 숫자를 공개하는 방식은 세부내용을 포괄하지 못하는 일방적인 기준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만큼, 종합적 기준으로 보강이 되면 명확한 판단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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