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의 동성 커플 축복 승인…교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이슈크래커]

입력 2023-12-19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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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교인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 (AFP/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인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 (AFP/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톨릭의 전통을 뒤집는 역사적인 결정을 발표했습니다. 교황청은 18일(현지시각) ‘간청하는 믿음’이라는 제목의 선언문을 통해 사제들이 동성 커플을 축복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승인했는데요. 교황청은 해당 선언문에서 “모든 규정에 어긋난 상황을 승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축복은 하느님이 모든 이를 환영한다는 의미이다”라고 말하며 동성 커플 역시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명시했습니다.

그동안 가톨릭과 기독교에서는 동성애를 ‘죄악’으로 여겨왔는데요. 가톨릭과 기독교에서는 동성결혼을 신의 뜻에 어긋나는 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종교적 지향점은 성경을 통해서도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먼저, 구약성서인 레위기 18장 22절에는 “너는 여자와 동침함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라는 내용이, 20장 13절에는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라”라는 내용이 명시돼 있습니다. 레위기는 죄악 된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이 하느님 앞에서 죄사함을 받고 정결하게 되는 법을 담아냈는데요. 인간으로서 하지 말아야 하는 일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동성애도 근친상간, 간통, 인신 제사 등과 함께 하지 않아야 하는 일로 명시돼 있는 것이죠.

신약성경인 로마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로마서 1장 26~27절은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이 받았느니라”라고 말하며 동성애는 그릇된 행위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위와 같이 동성애를 ‘신의 뜻에 어긋나는 일’로 명시하고 있음에도 교황청이 사제들의 동성 커플 축복을 승인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교황청이 말하고 있는 축복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축복’과 ‘성사’의 차이

▲멕시코시티의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부근에서 동성결혼 합법화 지지 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AP/연합뉴스)
▲멕시코시티의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부근에서 동성결혼 합법화 지지 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AP/연합뉴스)

교황청이 말하고 있는 ‘축복’은 ‘성사’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교황청이 사제들이 동성 커플을 축복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승인했다고 해서 동성결혼이 종교적으로 허용된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가톨릭에서는 동성결혼을 금하고 있는데요. 교황청은 동성 커플 축복 승인을 선언함과 동시에 “이번 선언이 (이성간) 혼인성사와 혼동될 수 있는 예배의식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결혼에 대한 교회의 전통적 교리를 수정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결혼에 대한 교회의 오랜 가르침을 변경하거나 축복의 지위를 입증하지 않고도 ‘비정규적 상황’에 있는 커플과 동성 커플에 대한 축복의 가능성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선언이 맥락에 정확히 들어맞는다”라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즉, 축복의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것이지 동성 간 ‘혼인성사’ 자체는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여전히 교회 측에서는 정해진 의식을 사용하거나 결혼식에 어울리는 의복과 몸짓을 사용해 진행하는 합법적 동성 결혼은 반대하며 이와 동시에 축복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만, 교황청이 이번에 전달하고자 하는 선언문의 핵심은 하느님의 자식이라면 누구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정기적인 의식에서조차 동성애를 이유로 축복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승인’이 아닌 ‘단순한 축복’을 구하는 이들조차 막거나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이러한 교황청의 생각은 “축복은 모든 규정에 어긋난 상황을 승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느님이 모든 이를 환영한다는 의미”라는 말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이는 ‘축복(blessing)’이라는 용어를 ‘종교적 허용’과 분리해 광범위하게 해석해보자는 것입니다. 사제의 축복이 종교적 허용과 직결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초월적 관계 추구를 허용한다는 것으로 볼 수 있죠.

결국 ‘실현 가능성’은 교인들에게 달려있다

▲성탄전야 미사 기도하는 신자들. (연합뉴스)
▲성탄전야 미사 기도하는 신자들. (연합뉴스)

종교계의 진보적인 움직임은 이전부터 관측됐습니다. 앞서 올해 초 영국 성공회 총회에서도 동성 커플을 위한 축복 기도문 허용이 승인된 바 있는데요. 그러나 이에 11명의 주교가 반대하며 진행이 지연됐습니다. 해당 기도문에 반대 의견을 표시한 폴 윌리엄스 주교는 “주교들은 이 같은 기도문의 사용이 교리의 변화를 나타낼 가능성이 크다는 조언을 받았다”라며 “여러분의 감독으로서 영국교회의 분명한 가르침에서 벗어나는 기도를 하라고 여러분에게 조언할 수 없다”라는 의견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대립이 지속되자 사우스웰과 노팅엄 교구의 주교는 교구 성직자들에게 승인받을 때까지 이를 사용하지 말 것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죠.

교황청 역시 이전부터 지속해서 진보적인 견해를 드러내 오고 있습니다. 올해 2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동성애를 가진 분들도 하느님의 자식입니다. 하느님은 그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들과 함께하십니다”라는 말을 전하기도 했죠.

교황청은 11월에 트렌스젠더도 가톨릭 신자로 세례받을 수 있다는 진보적인 지침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단, ‘공개적 스캔들이나 신자들 사이에 혼란을 일으킬 위험이 없는 한’이라는 전제 조건을 달아 교황청의 진보적 결정이 초래할 혼란을 방지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국 종교계와 종교 지도자들이 변화를 추구해도 교인들의 지지나 수용이 없는 한 보편적인 관행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황청이 성소수자에 대한 접근 방식을 바꾸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가톨릭 교인들이나 보수 가톨릭 단체가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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