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언론마저 '韓 빈손 외교' 우려
엑스포 유치실패 국민적 실망↑
국경 넘는 순간 정치 중단돼야
협상의 최우선 과제는 상대의 출구를 미리 마련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당위성을 강조하기에 앞서 상대방이 자존심을 잃지 않는 선에서 물러날 수 있도록, 적절한 대안을 미리 마련해 놓고 줄다리기를 시작하는 것이지요. 하나를 얻고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건 기본입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 하나를 얻는 게 최우선입니다. 외교가 특히 그렇습니다.
2018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당시 민감한 품목 가운데 하나가 쌀이었습니다. 쌀 시장 개방을 놓고 미국이 압박 수위를 높이던 때였지요.
우리에게 쌀은 항상 중요한 품목입니다. 자칫 시장을 잘못 개방했다가 우리의 식량 주권을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10년이 지나서 추진된 FTA 재협상이라고 사정이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쌀은 우리에게 여전히 중요한 농산품목이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결국 쌀 시장을 개방하고 자동차 수출을 얻었습니다.
본격적인 외교 협상에 앞서 여론전이 중요한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우리 대표단은 재협상 초기부터 “쌀 시장은 절대 개방할 수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반복했습니다. 협상 단계별로 전략을 짠 것이지요.
“절대 안 된다”며 끝까지 버티며 쌀 시장 개방을 협상 막바지까지 끌고 갔습니다. 결국, 마지막에는 허탈한 심정까지 내보이며 쌀 시장을 힘겹게 양보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자동차 관세라는 폭탄을 피하는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유리한 결과를 얻어냈지요.
하나를 얻고 하나를 내줘야 한다면, 우리에게 가장 유리한 품목을 얻고 상대적으로 덜 유리한 것을 내주는 게 맞습니다. 내줄 때도 가볍게 내줘서도 안 됩니다. “이거 정말 우리가 손해 보면서 양보하는 거야! 알지?”라는 표정도 필요합니다.
그렇게 얻어낸 자동차 관세 혜택은 5년여가 지난 지금,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고 있습니다. 올해 우리나라 자동차는 수출 700억 달러를 달성하게 됩니다. 반도체가 부침을 겪는 사이, 자동차가 수출 700억 달러 역사를 쓰며 대한민국이 버티는 데 힘을 보탠 것이지요.
재협상 때 쌀 시장을 개방했지만, 수급 균형 정책을 마련해 쌀 산업의 안정화를 도모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이 대한민국에 쌀을 수출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크지 않았습니다.
하나를 내주고 하나를 얻어낸 외교 성과가 코로나 쇼크 이후 자칫 경제위기에 빠질 뻔했던 한국 산업계를 살려낸 셈입니다.
그렇게 외교는 시소게임입니다. 양국이 협상 테이블에서 치열한 머리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하나를 얻고 하나를 포기하는 방식이지요. 절대 하나를 얻고 둘을 포기하는 일은 없습니다. 각각 하나씩을 얻되 누가 더 무겁고 중요한 결과를 얻어 가느냐가 핵심이지요. 그래서 외교를 일컬어 ‘51대 49의 미학’이라고 합니다.
설령 51이 아닌 49를 얻었다 해도 문제 되지는 않습니다. 협상을 마치는 순간, 다음 협상이 시작됩니다.
지난 3월 한일정상회담 직후 일각에서는 “빈손 외교”라는 혹평이 이어졌습니다. 해외 언론들이 먼저 그렇게 판단했습니다. 일본 언론에서조차 “한국 정부가 보여준 노력에 제대로 호응하지 않으면 악재가 될 수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으니까요.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국의 태도가 순간 돌변할 수 있으니 대응해야 한다”라며 회담 결과를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외교는 끊임없는 수 싸움입니다. 51대 49에서 안타깝게 49를 가져왔다면, 아니 그조차도 건져내지 못했다면 그다음 협상에서는 반드시 51 이상을 가져와야 합니다. 다만 또다시 49를 가져오는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이어진다면, 외교와 국정 책임자는 반드시 뭇매를 받아야 합니다.
juni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