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을 판' 장인수 前오비맥주 부회장 "손주들이 기부문화 배워 뿌듯해"

고졸 영업사원에서 대기업 CEO까지 오른 '영업맨 신화'
2015년부터 2억4000만원 기부…아너소사이어티 가입
"청년세대 성장, 뒤에서 응원·지지…기부는 계속 할 것"

내가 기부하는 걸 자식과 손주들이 배울 때 뭔가 보람찼다. 손주가 학교 바자회 활동에서 본인이 판 물건값을 전부 기부하고 왔다며 내게 자랑하더라. 자기도 뭘 사고 싶었을 텐데, 그런 손주의 모습을 보니 무척 뿌듯했다.

▲장인수 전 오비맥주 부회장이 27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이투데이 빌딩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이투데이DB)

최근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한 장인수 전 오비맥주 부회장은 27일 본지와 만나 “기부는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결국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라며 “기부를 통해 우리 가족도 변하고 있다. 특히 작은 것도 나누려고 하는 손주의 모습이 감동적이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장 전 부회장은 고졸 영업사원에서 대기업 CEO까지 오른 신화적 인물이다. 한 제지회사의 경리직 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1980년 고졸 영업사원 공채를 통해 진로에 입사했다. 이후 하이트주조·주정 대표이사를 거쳐 2010년 오비맥주로 적을 옮겨 영업담당 부사장과 대표이사를 지냈다.

그는 은퇴 이후 '제2의 인생'을 고민했다. 장 전 부회장은 "친한 교수랑 대화하다가 강의 얘기가 나왔다. 교수가 '자기는 평생 남의 이론을 누군가에게 가르쳤는데, 당신은 밑바닥부터 올라왔으니 자기만의 이론이 있지 않겠냐'고 하더라. 그걸 누군가에게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사회공헌이고 재능기부라며 강의를 추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나도 처음엔 '내가 무슨 강의를 하나?' 생각했다. 고민하다가 영업사원으로 일하며 얻은 노하우를 후배 기업인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강의를 결심한 계기를 밝혔다.

▲장인수 전 오비맥주 부회장이 27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이투데이 빌딩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이투데이DB)

장 전 부회장은 강의하고 받은 돈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 돈은 내 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 기업인들과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받은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통장에 모아뒀다가 자신의 돈을 보태 기부했다. 이렇게 그는 2015년부터 기부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2억4000만 원 가까이 기부했다.

그는 "기부단체 10곳을 추렸다. 어린이나 노인을 돕는 단체, 장애인을 돕는 단체, 좋은 일을 하는 시민단체 등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며 "그러다가 주변의 권유로 2018년에 '진심을 팝니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많은 분에게 받은 걸 돌려준다는 심정으로 썼기 때문에 이 책의 인세 또한 기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주류 영업이라는 특별한 분야를 35년 동안 파고든 그의 몸에는 영업뿐만 아니라 사회생활 전반의 이치가 담겼다. '진심을 팝니다'에는 그의 치열한 몸짓이 담겼다. 장 전 부회장은 책을 통해 '성실함'과 '친화력' 그리고 '소통력'을 삶의 대원칙으로 꼽았다.

그는 "오비맥주 대표를 하면서 많은 직원을 만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어린 직원을 만나려고 했다. 그들은 용기가 있어서 하고 싶은 말을 가감 없이 잘한다"며 "현장에서 그들이 겪는 어려움이 뭔지 파악하고, 그것을 빨리 해결해주는 게 리더의 역할이다. 그게 소통의 첫걸음"이라고 밝혔다.

장 전 부회장은 오비맥주 재직 중 특유의 성실함과 친화력, 소통력을 발휘하며 직원들과 화합했다. 결국, 당시 2위에 머물던 오비맥주를 시장 점유율 1위 업체로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그는 "부족함이 날 성장하게 만들었다. 부족해서 동기들보다 1시간 더 늦게 퇴근하고, 부족해서 인사할 때 머리를 더 숙였다"며 "부족함이 내 성공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그는 "나이든 세대가 자꾸 뭘 하려고 하면 안 된다. 청년 세대가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뒤로 물러나 그들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게 내 역할"이라며 "크든 작든 기부는 계속할 예정"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