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현 칼럼] 청룡의 해 혹은 청개구리의 해

입력 2024-01-0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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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세계적 화장품 기업 일궈낸 로더
공짜마케팅으로 소바자 마음잡아
선거의 해, 포퓰리즘 준동 경계를

글로벌 화장품 업체인 에스티로더. 공동창업자 로더는 미국 뉴욕의 젊은 미용실 종사자였다. 어느 하루, 부유층 고객이 입은 블라우스에 눈길이 가 어디서 샀는지 물었다고 한다. 고객은 웃는 얼굴로 되물었다. “알아서 뭐 하게요? 살 형편도 안 될 텐데….”

미국이 자랑하는 대기업 에스티로더가 배태된 순간이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물러난 로더는 굳게 다짐했다. 누구도 저런 식으로 말하게 하지 않겠다고. 철학자 니체는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난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고 했다. 로더는 고객의 갑질에서 운명을 바꿀 동력을 얻었다. 물론 로더가 ‘이생망’ 주문이나 읊었다면 뒷얘기는 달랐을 것이다. 다 하기 나름이다.

2024년 새해가 밝았다. 이 세상에 수없이 다채로운 결심이 있겠지만 크게는 둘로 나뉜다. 하나는 로더처럼 극적 성취를 낳는 결심이다. 다른 하나는 흐지부지되는, 촛농처럼 쓸모없는 작심삼일 유형이다. 새해는 새 결심의 시기다. 로더 같은 수모 없이도 인생의 전기를 맞으니 반길 일이다. 만에 하나 극적 성취로 이어진다면 다홍치마다. 다 하기 나름이다.

새해는 음력 기준으론 용의 해다. 그것도 상서롭다는 청룡이다. 용의 후손을 자처하는 나라가 있다. 중국이다. 동양 신화에서 인류 창조를 맡는 여와는 얼굴은 인간, 하반신은 뱀으로 그려지기 일쑤다. 그리 보면 여와는 뱀이고, 더 나아가 용으로 이해될 여지가 있다. ‘용의 후손’은 이런 해석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주장이다. 심지어 시진핑 국가주석은 2017년 “우리는 용을 이은 사람(龍的傳人)”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해석은 열려 있다. 다른 극단에는 ‘개구리 후손’도 있다. 중국 역사학자 이중톈(易中天)이 힘주어 간추렸다. “여와는 원래 개구리였다”고. 여와가 뱀 형상이 된 것은 후한 시대 이후 조작한 결과라고 한다. 한자 풀이를 피해 개구리론의 요체만 빌리면 여와의 ‘와’는 개구리 울음소리다. 여와는 ‘암컷 개구리’인 것이다. 이를 중국처럼 한껏 밀어붙이면 새해는 개구리의 해가 될지도 모른다. 그것도 청개구리.

뭔 말인가. 새해가 어떤 한 해가 되느냐 하는 것은 현재로선 ‘열린 질문’이란 얘기다. 중국부터 그렇다. 새해는 실제로 용의 해가 될 수도, 아니면 개구리의 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행동은 청개구리처럼 하면서 용의 피붙이라고 바득바득 우기는 것은 어리석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이어질 새해 도전에 어찌 현명히 대처하느냐가 백배 중요하다. 다 하기 나름이다.

대한민국은 특히 각성할 필요가 있다. 2013년 한국 경제를 ‘냄비 속 개구리’에 빗댄 글로벌 컨설팅사 맥킨지가 지난해 말 ‘개구리 2탄’을 내놓지 않았나. “10년 사이에 냄비 물의 온도가 더 올라갔다”는 경보였다. 새 경보를 허투루 듣는 감이 없지 않다. 여간 걱정스럽지 않다. 어찌해야 하나. 적어도 두 사안을 잘 챙겨야 한다. 둘 다 선거다.

하나는 해외 방면이다. 76개국이 올해 선거를 치른다고 한다. “한 세대 만에 가장 격동적인 한 해를 맞고 있다”는 월가 촌평도 있다. 1월 대만 총통 선거, 4~5월 인도 총선 등이 다 중요하다. 동북아 지정학을 크게 흔들 수 있다. 11월 미국 대선이 중대 변곡점이란 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다른 하나는 4월의 국내 총선이다. 사실, 이 변수가 뒤틀리면 해외는 쳐다볼 것도 없다. 곧바로 개구리의 해를 보게 된다.

절체절명의 변수인 4월 총선에 어찌 임해야 하나. 로더 성공담이 일종의 반면교사다. 로더는 선발업체들의 비웃음을 감수하면서 업계 최초로 ‘공짜 샘플’을 내놓아 사업을 키웠다. ‘사은품’ 마케팅이다. 이를 통해 결국 누가 돈을 벌었느냐가 핵심이다. 로더였다.

선거 공학도 마찬가지다. 공짜 마케팅으로 환심을 사는 정상배들이 이익을 챙기게 돼 있다. 화장품 기업과 다른 점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해피엔드는 없다는 사실이다. 포퓰리즘 정치가 설치면 나라는 결딴난다. 남미의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가 생생한 실례다. 4월 선거에서 저질 매표 행태만은 절대적으로 추방해야 한다. 단호한 결심이 필요하다. 용의 해. 개구리의 해가 나뉘는 갈림길이 눈앞에 있다. 어느 길이 펼쳐질까. 역시 다 하기 나름이다. trala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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