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불똥 키우는 태영의 '줄다리기'

입력 2024-01-0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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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보규 부동산부 차장

 “이대로는 죽어도 눈을 못 감을 것 같아 염치 불고하고 나섰습니다. 살 수 있는 길을 찾게 도와주십시오. 기회를 주신다면 사력을 다해 꼭 살려내겠습니다.”

 윤세영 태영그룹 창업회장이 지난주 산업은행에서 열린 태영건설 워크아웃 관련 설명회에서 호소문을 읽어내려 갔다. 사과와 반성, 간절한 부탁으로 채워진 호소문은 절절함이 묻어났다. 90대의 윤 창업회장이 눈물까지 보였다고 하니 설명회에 참석한 700명의 채권단 관계자들은 그의 절실함을 느꼈을 듯하다. 윤 창업회장의 바람이 이뤄지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을 법하다.

 

 자구노력 없고 경영권 유지 ‘의혹’만

 하지만 설명회가 끝난 뒤 채권단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냉담함을 넘어 비판을 쏟아냈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은 예정에 없던 기자간담회를 열고 “주채권으로서 대단히 유감스럽다”며 “구체적인 자구 계획안을 제시하지 않고 ‘그냥 열심히 하겠으니 도와달라’고 한다”고 지적했다. 태영그룹이 내놓은 자구안에 대해 채권단 75%가 동의한다고 기대하기도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융당국 수장들도 잇따라 경고장을 날렸다. 대통령실에서도 자구노력 이행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워크아웃이 무산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나왔다.

 강한 비판과 경고가 전방위적으로 쏟아지는 것은 윤 회장의 말과 달리 태영 측이 약속을 성실히 이행하지 않을 뿐 아니라 태영건설을 살리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지 않다고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태영그룹은 태영인더스트리 매각자금 1549억 원을 태영건설에 지원하기로 했는데 이 중 890억 원을 TY홀딩스의 연대보증 채무를 갚는 데 썼다. 태영그룹은 태영건설과 관련된 것이라 태영건설을 위해 자금을 쓴 게 맞는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채권단은 태영건설 지원이 아니라 오너 일가의 경영 유지를 목적으로 TY홀딩스의 리스크를 경감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자구안의 내용도 채권단의 눈높이에 크게 못 미친다. 태영그룹의 자구안이 공개되기 전 채권단 안팎에서는 오너 일가의 사재출연 규모가 3000억 원 안팎은 돼야 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SBS와 윤 회장의 TY홀딩스 지분을 활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사재출연 규모는 총 484억 원이고 그나마도 윤 회장의 태영인더스트리 지분 매각대금 416억 원을 제외하면 68억 원에 그친다. SBS와 윤 회장의 TY홀딩스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자구안의 내용뿐 아니라 채권단을 설득하기 위한 노력도 부족했다. 채권단 설명회장을 중간에 빠져나온 채권단 관계자는 “자구안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을 거면 설명회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태영그룹은 채권단 설명회에서 사재출연 규모를 공개하지 않았다. 다음날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는데 설명회 이후에 내놓은 이유는 찾기 힘들다. 윤 회장의 지분 매각대금 416억 원은 이미 알려졌던 내용이고 윤 회장과 윤 창업회장이 총 68억 원어치의 태영건설 자회사 채권을 매입한 시점도 작년이기 때문이다.

태영그룹 측에서 담보제공이나 처분에 제약이 많다고 주장하는 SBS 지분은 차치하고, 윤 회장의 TY홀딩스 지분은 건드리기 힘들다고 하는 것도 진정성에 의구심을 품게 하는 부분이다. 윤 창업회장이 채권단 관계자 앞에서 강조한 것처럼 정상화될 가능성이 충분한 기업이라면 그 높은 가능성을 믿고 TY홀딩스 지분을 담보로 내놓을 만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사재출연 ‘미미’…채권단 신뢰 못얻어

 태영그룹이 비난과 압박에도 별다른 추가 대응 방안을 내놓지 않는 것은 이미 할 수 있는 것을 다해서일 수 있다. 어쩌면 워크아웃이 무산돼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쨌든 문제는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 이후 추진 과정에서 당국과 채권단, 시장에 불신이 쌓이고 있고 건설업계 전반에 대한 신뢰 훼손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은 솥뚜껑 보고 놀란다.

 태영의 처지가 어느 쪽이든 진심으로 협력사, 채권단, 수분양자, 건설업계와 경제를 걱정했다면 한시라도 빨리 있는 그대로를 모두 털어놔야 한다. 불필요한 시간 낭비보다 나쁜 것은 없다.  j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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