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인구 역(逆)피라미드’의 습격

입력 2024-01-10 05:00 수정 2024-01-10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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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최후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지난해 10월 7일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공격에 허를 찔린 이스라엘이 피의 보복에 나선 결과다. 유엔은 “가자지구가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으로 변했다”고 탄식했다. 하마스 박멸을 선언한 이스라엘은 지휘부의 씨도 말리고 있다. 뭘 믿고 덤볐을까 싶을 만큼, 속수무책이다. 애초 팔레스타인은 어떤 식으로든 이스라엘의 적수가 아니었다. 다만 지금과는 다른 이야기가 전개됐을지 모를 변수가 하나 있었다. 바로 ‘인구’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역사는 표면적으로 무력 충돌이었지만, ‘출산율’ 전쟁이기도 했다. 1948년 유대교 국가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포하고 1967년 3차 중동전쟁에서 아랍권이 참패하면서 현재 모습의 지도가 만들어졌다. 수세에 몰린 팔레스타인이 기댄 건 ‘출산의 힘’이었다. 21세기 초 이슬람교도는 유대인보다 아이를 거의 두 명 더 낳았다. 당시 유대인의 합계출산율은 2.67로, 이슬람교도(4.57)의 절반에 불과했다. 아랍인들은 버티기만 해도 이스라엘과 가자·서안지구에서 다수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유대인은 ‘웜페어(전쟁을 말하는 워페어에 빗대 자궁을 무기로 이용한다는 의미)’에서 밀리지 않았다. 2019년 기준 이스라엘의 합계출산율은 이슬람교도 3.16, 유대인 3.09로 거의 균형을 이뤘다. 레비 에슈콜 이스라엘 당시 총리는 “어디에서든 우리가 소수가 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며 ‘숫자’ 전쟁 의지를 드러냈다. 수적 우위를 노리던 팔레스타인은 끝내 반전 드라마를 쓰지 못했다. 역사엔 가정이 없다지만, 인구전쟁의 다른 결말은 지도 모양을 바꿔 놨을지 모른다.

인구는 인류 역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여왔다. 출생·사망·이주 흐름이 얽히고설키면서 국가의 흥망성쇠를 가르고 세계 질서를 재편했다. 영국, 독일, 러시아, 미국으로 이어지는 제국의 역사는 인구 폭발을 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수(數)’는 군사력과 경제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인이었고, 자원·지정학·기술 등과 결합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했다. 애덤 스미스는 “어떤 나라가 부강한지를 결정적으로 나타내는 지표는 주민의 숫자”라고 단언했다.

200년간 가속이 붙었던 인구 성장은 후진을 시작했다. 출생률이 하락하고 기대수명이 연장되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인구통계학적 변화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인구 구성에서 중장년이 다수를 차지하는 현상은 인류 역사상 처음이다.

인구물결의 역습은 기존 질서에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14억 인구를 등에 업고 패권 경쟁에 나선 중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국가 대열에 합류했다. 영국과 미국이 경험한 고령화 속도보다 3배나 빠르다. 반면 중위 연령 18세인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 인구는 세계 인구보다 갑절 속도로 늘고 있다. 국제질서는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인구 역피라미드는 경제이론의 수정도 요구한다. 은퇴자와 근로자 수의 역전 현상은 소비 주도 성장 시대의 종말을 뜻한다. 만성적인 저성장 구조에서 살아남는 법은 무엇인가.

인구구조가 변곡점을 맞은 가운데 인구통계학적 사유가 절실하다. 경제·군사·외교·복지 등 모든 논의는 인구에서 출발해야 한다. 2040년 중위연령이 50세에 이르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새판짜기를 요하는 시대적 과제 앞에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노인들이 오래 산다’ ‘건방진 어린 놈’ 등 공론장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발언들은 인구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관점이 얼마나 단편적인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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