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우려 키우는 문산법…“불공정 잡으려다 불법유통만 부추길라”

입력 2024-01-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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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웹툰과 웹소설 등 디지털 콘텐츠 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와 국회에서 추진 중인 ‘문화산업의 공정한 유통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안’(이하 문산법)이 입법 취지와 달리 오히려 불법유통만 부추기는 등 산업 자체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문체부가 최근 문산법과 관련해 하위법령을 통해 산업별 규제범위 등 세부적인 내용을 구체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더 큰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문체부는 지난 15일 문산법 추진과 관련해 “콘텐츠 업계 의견을 수렴해 우려가 없도록 추진하겠다”면서도 “장르별 특수성을 반영한 불공정행위의 세부 기준 등은 동 법률에 따라 하위법령에 위임돼 있다”고 밝혔다.

업계는 반발에 나섰다. 충분한 의견수렴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는 16일 “현재 법률안에 따른 규제가 시행되면 웹소설 산업은 위축되며, 창작자의 이익도 출어들고 결국 웹소설 산업 자체가 붕괴할 우려가 있다”면서 문산법 재검토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이보다 앞서 웹툰협회, 한국웹툰작가협회, 한국만화스토리협회, 한국만화웹툰학회, 한국웹툰산업협회, 우리만화연대 등 6개의 협단체도 지난 12일 문산법 전면 재검토를 촉구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플랫폼의 갑질로부터 창작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인데, 오히려 창작자들이 나서서 해당법의 재검토를 요구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문산법 적용시 매열무ㆍ기다무 없어진다?

전문가들은 문산법이 적용될 경우 불법유통사이트가 양산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무료로 작품을 보기 어려워진 이용자들이 불법 유통경로를 찾게 되는 경향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우려의 배경에는 웹툰과 웹소설 업계만의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이 있다. 웹툰·웹소설 플랫폼들은 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흥미 유발 등을 위해 초반 회차를 무료로 공개하는 프로모션 제도를 운영한다. 네이버에서는 해당 프로모션을 ‘매열무(매일 10시 무료)’로, 카카오는 ‘기다무(기다리면 무료)’로 부른다. 매열무와 기다무는 플랫폼뿐 아니라 창작자들의 주요한 수익모델로 통한다.

유병준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와 전성민 가천대 경영대학 교수가 2020년 진행한 ‘카카오페이지 사용자 이탈연구’에 따르면 ‘기다무’ 적용 시 웹툰 매출이 994.6%, 웹소설의 경우 3545.2%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업계에서는 판매 촉진 비용 전가를 금지하는 문산법이 적용되면 이러한 프로모션 제도가 폐지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무료 공개회차는 수익이 나지 않아서 창작자(작가)에게도 수익 배분이 이뤄지지 않는다”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플랫폼이 모든 (프로모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면 어떤 플랫폼이 흥행이 보장되지 않은 신인 작가나 비인기 작가 작품에 ‘매열무’, ‘기다무’ 프로모션을 지원하겠나”고 지적했다.

결국, 초반 회차 무료 공개가 불가능해지면 인지도가 낮은 작가들은 플랫폼 진입이 어려워지고, 소비자의 선택권 또한 줄어들 가능성이 커진다는 이야기다.

“깜깜이 절차, 업계 불안감만 키운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오른쪽 세 번째)이 지난해 11월 27일 서울 마포구  웹툰 제작사 재담미디어 사무실에서 열린 만화·웹툰 업계 관계자와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문화체육관광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오른쪽 세 번째)이 지난해 11월 27일 서울 마포구 웹툰 제작사 재담미디어 사무실에서 열린 만화·웹툰 업계 관계자와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문화체육관광부

업계에서는 법안 추진 과정에서 절차적 문제도 있다고 주장한다. 업계가 우려를 목소리를 낸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2020년 유정주 의원의 발의안과 2022년 김승수 의원 발의안을 반영해 만든해당법이 지난해 만화 ‘검정고무신’의 고(故) 이우영 작가 별세 사건 이후 이른바 ‘검정고무신법’이란 이름으로 탄력받기 시작하면서부터 업계에서는 개별 산업 특성을 반영하지 못해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를 끊임없이 내왔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업계에서 숱하게 우려를 제기해왔지만 문체부가 수정안을 공개하지도, 세부기준이 위임돼 있다는 하위법령이 무엇인지도 알려진 것이 없어, 수정안 검토 과정에서 업계 의견이 충분히 수렴되고 있는지 의문”이라면서 “문체부가 산업 진흥이 아니라 규제부서로 거듭나고 싶어하려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규제 영향에 대한 사전 스터디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학계 지적도 나온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문산법이 업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스터디가 충분히 돼 있지 않다. 경제 모델로 분석한 논문은 거의 손꼽을 정도다”면서 “웹툰이나 웹소설 시장이 이제 조 단위 산업이고, 정부의 규제가 산업에 미칠 영향이 수천억 원에 달할 수 있는데도, 법안을 추진하는데 사전에 연구도 제대로 안 하고 결정을 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법이 적용된다고 해서 기다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관련해서) 정해진 것도 없다”면서 “어떤 행위가 불공정 행위가 되는지는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하위법령을 통해 구체화할 수 있다. 업계 의견을 반영해 우려되는 사항들을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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