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 불안에 재탄생한 ‘악의 축’...양극화 심화 조짐

입력 2024-01-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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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부시가 북한과 이란, 이라크 묶어 부른 표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중국, 러시아도 사실상 포함
이스라엘 전쟁으로 악의 축과 서방 갈등 극에 달해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2002년 1월 29일 의회 국정연설에서 북한과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있다. 워싱턴D.C./AP뉴시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2002년 1월 29일 의회 국정연설에서 북한과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있다. 워싱턴D.C./AP뉴시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미국이 북한과 이란, 이라크를 묶어 불렀던 ‘악의 축’이 지정학적 불안 속에 다시 설정되고 있다. 북한과 중동에 국한됐던 악의 축은 이제 중국과 러시아까지 가세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과의 글로벌 양극화가 뚜렷해지는 모습이다.

최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주 캐나다 정부는 자국에서 개발된 민감한 기술 연구가 중국과 이란, 러시아로 이전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새로운 규정을 발표했다.

새 규정은 캐나다 대학과 연구기관 등이 언급된 국가들과 협력하는 것을 규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규정을 위반한 곳은 정부가 자금 지원을 중단하기로 했다. 규정에 적용되는 분야로는 인공지능(AI)과 첨단 에너지 기술, 항공우주, 위성 시스템 등이다.

캐나다 정부 관계자는 “캐나다는 전략적 연구가 해외 적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점점 더 우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중국 외교부는 “국가안보를 핑계로 중국 대학과 과학 기관을 탄압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캐나다의 결정은 세계 지형이 어떻게 갈리고 있는지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3월 20일 회담하고 있다. 모스크바/AP뉴시스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3월 20일 회담하고 있다. 모스크바/AP뉴시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9월 13일 회담하고 있다. 아무르(러시아)/로이터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9월 13일 회담하고 있다. 아무르(러시아)/로이터연합뉴스
신(新) 악의 축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시작해 이스라엘 전쟁에서 완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예상과 달리 장기전으로 이어지자 러시아는 북한과 이란에 군사·외교 지원을 요청했고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서방과 자연스레 선이 그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제 모스크바와 테헤란, 평양을 하나로 묶는 축이 지정학적 현실이 됐다”며 “미국과 동맹의 민주주의에 갈수록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 동맹이 우크라이나 지원을 놓고 균열을 보인 점이 새로운 악의 축의 성장과 무관하지 않다고 WSJ는 짚었다. 미국에선 공화당의 반대로, 유럽연합(EU)에선 친러 성향의 헝가리 방해로 우크라이나 원조가 어려운 틈을 타 반대 세력이 힘을 강화했다는 것이다.

악의 축은 미 의회에서도 이미 재언급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CBS뉴스와 인터뷰에서 “전 세계에는 중국과 러시아, 북한, 이란 등의 악의 축이 있다”며 “우리는 악의 축에 맞서야지, 그들과 거래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니키 헤일리 공화당 경선 후보도 지난해 “우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의 승리가 곧 중국의 승리라는 점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며 “우리는 결코 그 악의 축이 더는 추진력을 얻도록 놔둘 수 없다”고 피력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악의 축 발언이 아직 바이든 행정부에서 사용된 적은 없지만, 민주당에서도 거론되는 등 행정부에서 전혀 관심 없는 개념은 아니라고 짚었다.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해 10월 18일 회담하고 있다. 텔아비브/AP연합뉴스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해 10월 18일 회담하고 있다. 텔아비브/AP연합뉴스
▲리시 수낵(왼쪽) 영국 총리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9월 9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뉴델리/AP뉴시스
▲리시 수낵(왼쪽) 영국 총리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9월 9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뉴델리/AP뉴시스
이 분위기는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간 전쟁을 통해 무르익고 있다. 전쟁이 중동 전역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후티 반군이 미국이 지원하는 이스라엘과 부딪히면서다. 또 미국과 영국이 홍해를 지나는 선박을 공격하는 후티 반군을 공습하고 이스라엘은 시리아에서 이란군 장성을 사살하는 등 서방과 악의 축의 대결은 극에 달하고 있다.

무기 지원을 놓고도 갈등은 이어지고 있다. 지난주 AP통신은 하마스가 사용하는 무기에 이란과 중국, 러시아, 북한 무기가 포함됐다고 폭로했다. 이란산 저격 소총과 중국·러시아산 AK-47 돌격소총, 북한산 수류탄 등이 조달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연말 본지와 인터뷰한 바셈 나임 하마스 국제관계협의회 회장 역시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을 환영한다”며 “이란 역시 경제적으로든 무기 공급 측면에서든 우릴 지원하고 있다”고 밝힌 적 있다.

일련의 소식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전쟁 100일을 맞아 진행한 TV 연설에서 “하마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누구도 막지 못할 것”이라며 “악의 축도 그러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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