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강원도의 상고대 여행

입력 2024-01-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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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강원도 봉평에 글을 쓰는 사람 십여 명과 함께 일박이일 여행을 다녀왔다. 금요일 오후에 모여 토요일 점심 때 끝나는 여행 일정 속에 시인 한 명 소설가 한 명, 이렇게 두 시간씩의 작가와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다시 분임토의처럼 자기 글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며 밤늦게까지 술잔을 나누었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끝내기 무섭게 태기산 정상으로 나무에 맺힌 수정 고드름과 같은 상고대를 보러 떠났다. 일행 모두 쉰을 넘긴 사람들이라 여기 차 안에 ‘상고대’를 한자로 쓸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고 장난처럼 물어보았다. 아무도 대답 않는 가운데 한 사람이 한 글자씩 풀이하여 말했다. 상 자는 서리 상 자를 쓸 거 같고, 고 자는 서리가 굳어서 만들어지는 의미로 굳을 고 자를 쓰고, 대 자는 그런 지역을 나타내는 띠 대 자를 쓰거나 그런 나무들의 군락을 나타내는 무리 대 자를 쓸 것 같다고 했다.

제법 해석이 그럴듯하여 다시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보라고 말했다. 이내 돌아온 대답은 “순우리말이군요”가 아니라 “사전에는 한자가 안 나오는데요”였다. 젊은 날 내가 처음 ‘상고대’의 뜻을 찾아볼 때 그랬다. 국어사전에 짧게 ‘나무나 풀에 내려 눈 같이 된 서리’라고만 설명되어 있지 낱말 옆에 당연히 있을 것 같은 한자가 보이지 않았다.

어른이 되어서야 좀 더 자세한 풀이를 알게 되었다. 한겨울의 안개나 구름처럼 과냉각된 미세한 물방울이 영하의 조건에서 나무나 풀과 부딪히면서 만들어진 얼음 입자가 상고대라고 했다.

상고대라는 말을 들었을 때 다들 한자어 같은 느낌을 받는 것도 상고대의 상자가 서리 상 자가 아닌가 여겨서이다. 한자어가 아닌 우리말이라는 것도 재미있다.

어떤 관광지든 사람이 많이 가는 곳과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강원도 횡성군의 둔내면과 평창군 봉평면의 경계를 이루는 태기산 도로 정상에 차를 멈추고 다시 눈길을 한 시간 걸어 올라가면 마치 강원도 지역의 별천지와도 같은 상고대 지역이 나온다. 그 추운 날, 전국에서 몰려든 산악인과 여행객들로 자동차 두 대는 너끈히 비켜 다닐 만큼 넓은 산책로가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가득 메워졌다. 우리가 간 날은 날씨가 흐려 상고대가 햇빛 속에 수정처럼 빛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런 모습은 고향 대관령에서 자주 보았다. 지금 일곱 개의 터널과 산과 산 사이에 높은 교각으로 새로 시설한 현재의 고속도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아흔아홉 굽이를 돌아서 올라가던 옛 대관령을 오르내릴 때였다. 아침에 강릉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로 출발하면 그때 동해에서 떠오르는 햇살이 대관령 동쪽 면의 산 이마에 부딪친다.

추워서 차창을 열 수 없지만, 차창을 열고 손을 내밀면 바로 상고대가 손끝에 만져지며 얼음과 얼음이 부딪쳐 수정 고드름으로 연주하는 실로폰 소리가 들릴 것만 갔다.

해가 지는 저녁노을 속에 상고대 지역을 통과하면 그 느낌은 또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노을빛에 물든 고드름 같은 상고대가 이것이 사람들이 사는 인간 세상 풍경인지 신선들이 노니는 선계의 풍경인지 구분할 수 없게 한다.

소나무와 낙엽송에 맺힌 생고대는 기치창검처럼 날카로우면서도 웅장하고, 물푸레나무와 참나무에 맺힌 상고대는 가지마다 눈을 맞은 사슴뿔처럼 정감있고 부드럽다. 이 겨울이 가기 전,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상고대 기행은 어떨까, 만나는 사람들에게마다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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