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중국이 혁신의 꽃을 피웠던 기억

입력 2024-01-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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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정부가 얼마나 개입해야 하는지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다. 혁신은 시장이 주도하고 정부는 약간의 간접 지원만 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고, 기술진보에 대한 시장의 방향성을 신뢰할 수 없으니 공공선을 위해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개도국 시절에는 정부의 그립감이 좀 더 세야 한다는 절충안도 있으며, 아예 정부가 기업의 고삐를 쥐고 가야 한다는 강경파도 있다.

정부 규제개혁이 민간 혁신 가져와

2015년 중국은 제약산업에서 꽤 놀라운 규제개혁을 시도하였다. 당시 중국의 제약산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는데, 신약 임상시험 허가를 받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 큰 고민거리였다. 허가받겠다고 신청한 약품은 많고, 행정인력과 관련 장비는 부족했다. 빠르게 성장하는 개도국에서는 민간의 발전 속도를 정부 부문이 따라가기 버거운 경우가 자주 있는 법이다. 규제개혁은 임상시험을 신청한 기업이 관련 비용의 일부를 부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정부 당국은 이 돈으로 검사인력과 장비를 확충하여 일이 빨리 진행될 수 있도록 했다. 일종의 이용자 부담제도인 이 개혁의 결과는 어땠을까?

미국경제연구소(NBER)가 지난달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에 행해진 이 규제개혁의 효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Jia 외. Improving Regulation for Innovation). 예상대로 신약 임상시험 허가단계에서의 병목 현상이 해소되었다. 2014년에는 신약 임상시험 허가에 평균적으로 500일 정도가 걸렸는데 2021년 이것이 100일 이하로 단축되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새로운 혁신 기업이 제약업계에 참여하게 되었고, 기존 업체나 신규 업체 모두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향상된 제품을 생산하게 되었다. 정부의 규제개혁이 민간에서의 혁신을 가져온 성공 사례이다.

그런데 중국의 혁신적인 제도 개혁은 미국이 오래전부터 시행해온 ‘전문의약품 이용자부담금법(PDUFA)’과 그 내용이 사실상 같았다. 전문가들이 머리를 싸매고 없던 것을 창조해 낸 게 아니라 유연한 사고를 통해 결정하면 되는 그런 정책이었다. 개혁의 핵심은 규제라는 큰 틀은 놔두되 규제의 방식을 기업 친화적으로 바꾸고, 그 비용은 정부가 아닌 기업이 부담하는 제도였다. 이렇게만 해도 동물적 기질을 가진 중국의 혁신 기업들이 달려들었다. 시진핑 시대 민간기업은 당과 정부가 정한 ‘올바른’ 기술을 개발하도록 요구받는다(Max and Gunter. 2023. The Party Knows Best. MERICS). 정부는 그들이 제시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에는 당근(보조금, 금융 우대, 정부 지원사업 참여 등)을 제공한다. 정부의 뜻을 따르지 않은 기업에는 채찍이 기다린다. 금융 측면에서의 불이익도 있지만, 가장 두려운 부분은 인민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는 사회적 낙인이다. 기업인에게 조금의 실수도 하지 말라면 그것은 사업을 접으란 이야기다.

민간기업 투자 늘어야 실업률 낮아져

위의 MERICS 보고서는 시진핑 집권 10년 동안 민간기업의 투자가 10% 감소했고, 서비스업보다 제조업으로의 투자 비중이 더 늘어났다고 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서비스산업은 제조업보다 고용 창출 효과가 훨씬 높다. 중국에서 민간기업은 고용의 80% 정도를 책임진다. 중국의 실업률은 작년 6월 21.3%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공식 석상에서 사라졌다. 여섯 달 동안의 정풍운동(整風運動) 덕분인지 금년 1월 14.9%라는 훨씬 날씬한 수치로 다시 나타났지만, 그 누구도 반가워하지 않았다.

실업률을 낮추려면 민간기업이 투자를 늘려야 하고, 기업가가 동물적 기질을 발휘할 공간이 있어야 한다. 2015년 제약산업에서의 혁신 경험은 중국 민간기업이 정부가 주는 당근만 먹고사는 나약한 존재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이런 행복했던 순간이 다시 올 수 있을지 과거를 회상하는 중국 기업인들이 참 답답해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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