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재은 사회복지학회장 "연금개혁, 일단 급한 불이라도 꺼야" [이슈n인물]

입력 2024-02-02 05:00 수정 2024-02-02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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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료 12% 수준까진 이견 적어…시간 번 뒤에 구조적 문제 논의해야"

▲석재은 한국사회복지학회장(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사진=한국사회복지학회)
▲석재은 한국사회복지학회장(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사진=한국사회복지학회)
석재은 한국사회복지학회장(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은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12% 이상으로 인상하는 데 대해선 이견이 적다. 일단 이 수준까지라도 보험료율을 올려 시간을 번 뒤에 소득대체율이든, 보험료율 추가 인상이든, 기초·퇴직연금과 관계 등 구조적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석 회장은 29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석 교수는 올해 42대 사회복지학회 학회장에 취임했다. 연구활동 외에도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민간자문위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민간위원, 사회보장위원회 실무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정책 수립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하 일문일답.

Q. 현재 국민연금 논의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A.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공감대가 형성됐으나 그 정도와 속도를 두고 이견이 있다. 소득보장을 강조하는 쪽에서는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자면서 필요 보험료율을 고려하지 않은 13% 안을 제시했고, 다른 쪽에서는 소득대체율을 40%로 유지하면서 보험료율만 15%까지 올리는 안을 제시했다. 개인적으론 후자를 지지하지만, 공론화를 앞두고 두 안을 함께 제시하는 건 논리적으로 정합성이 떨어진다. 어쨌든 12% 이상으로 인상하는 데 대해선 이견이 적다. 일단 이 수준까지라도 보험료율을 올려 시간을 번 뒤에 소득대체율이든, 보험료율 추가 인상이든, 기초·퇴직연금과 관계 등 구조적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완벽한 합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급한 불이라도 꺼야 하지 않겠나.

Q. 국민연금 개혁만큼 시급한 문제가 기초연금 개혁인 것 같다.

A. 지난해 기초연금 적정성 평가위원회에 참여했다. 당시 노인빈곤율 해소 측면에서 기초연금 목표 수급률인 노인 인구 70%가 합리적 근거 없이 정해졌다는 지적이 많았다. 특히 노인 인구의 전반적인 소득·재산 수준이 높아지면서 선정기준액(기초연금 수급 기준 소득인정액)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소득·재산이 충분한 노인들도 다 기초연금을 받는다. 제한된 자원 내에서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데 최적화한 투자는 아니란 생각이 든다. 사실 기초연금은 도입 당시부터 굉장히 혼란스러운 정체성을 두루 내재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좀 정리할 필요가 있다. 기초연금을 노인 빈곤 해소에 목적을 둔 제도로 재설계하는 게 필요하다. 다만, 급격히 정책을 바꾸긴 어려우니 수급 기준을 목표 수급률이 아닌 기준중위소득으로 개편하는 게 어떨까 싶다. 현재는 소득 하위 70% 노인의 소득·재산수준이 기준중위소득 100% 정도인데, 수급 기준을 기준중위소득으로 개편하고 이 100%를 현실화하는 게 바람직하다.

Q. 최근 저출산·저출생 용어가 혼용되고 있다. 정책적으로 ‘저출생’이란 말을 쓰는 게 바람직한지 의문이다.

A.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도 그렇고 다 ‘저출산’이 맞다고 한다. 저출산과 저출생은 개념과 용도가 다르다. 저출산이 성차별적 용어라고 쓰지 말자는데, 그렇게 할 일이 아니다. 명확하게 다른 단어를 혼용하면 혼란만 빚어진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제시하는 정책들도 ‘아이를 낳는 데’ 방해요인을 제거하고, 출산·육아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것이다. 기관의 역할을 고려해도 저출산이 맞다. 저출생이라고 하면 지방 가임여성 감소로 출생아가 줄어드는 문제인데, 이걸 해결하는 건 지역 균형발전이다. 위원회가 따로 존재한다. 인구정책이란 큰 틀에선 저출산·고령화 대응과 지역 균형발전이 모두 포함되지만, 기관마다 고유한 기능이 있다. 현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명칭을 바꾸자는 법안도 발의돼 있는데, 이런 차원에선 바람직하지 않다.

Q. 네 차례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이 수립됐지만, 저출산 문제는 해마다 심각해진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논의구조의 문제로 봐야 할지, 단순한 정책실패로 봐야 할지 고민이다.

A. 위원회가 제대로 작동하고 효과를 내려면 다른 기관·기구들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지역 균형발전만 해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단독으로 뭘 만들어 추진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런데, 중앙행정기관들이 그렇게 협조적이지 않다. 대통령이 직접 움직일 때만 바짝 협조하고, 평소엔 협조하지 않거나 단독으로 정책을 발표한다. 기획재정부는 재정을 틀어쥐고 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재정적으로 협조하지 않으면서 ‘예산안 편성권은 우리에게 있으니 우리가 인구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겠다’고 한다. 이건 아닌 것 같다. 기본적으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대통령이 위원장인 기구이고 모든 부처의 상급기관인데 어디에서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장관들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정부위원인데, 회의에 출석하는 장관이 누가 있나. 사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나름대로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 기존의 정책들을 평가해 선별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정책과제들을 발굴하고 있다.

▲석재은 한국사회복지학회장(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본인 제공)
▲석재은 한국사회복지학회장(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본인 제공)
Q. 저출산 문제가 가장 큰 이슈이다 보니 고령화 문제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것 같다.

A. 고령화는 저출산과 달리 우리가 잘 대응하면 극복할 수 있는 문제다. 복지지출을 합리적으로 재구조화하고, 현재 40~50대의 노후 준비를 도와 미래 노인을 가난하지 않게 하면 된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고령화 문제는 늘 저출산의 후순위였다. 아직은 사회적 부양부담이 낮아서 문제의 심각성이 잘 체감되지 않는다. 지금부터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연금제도도 개혁해야 하고, 의료체계도 개선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생애 말기에 평생 지출하는 의료비의 절반을 쓰는 구조다. 사회적 입원이 강요되는 분위기에서 요양병원이 늘고, 관련 의료비 지출도 급증하고 있다. 이제는 입원 기간, 병상 수 등 양적 규제가 필요하다. 삶의 질 차원에서도 그렇다. 생애 말기에 요양병원에서 무의미한 연명을 지속하고, 이 비용을 사회가 감당하도록 하는 게 윤리적으로, 가치적으로, 그리고 효용 측면에서 타당한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인간의 존엄성 측면에서 삶뿐 아니라 죽음에 대해서도 주체성이 중요하다.

Q. 학회 이야기를 듣고 싶다. 올해 핵심 의제는 무엇인지

A. 사회복지학회는 사회복지학 전반을 아우르는 모학회다. 상반기와 하반기 정책토론회, 추계 학술대회가 예정돼 있는데, 올해에는 ‘복지 대전환’을 논의해보려고 한다. 인구구조와 노동시장 변화, 디지털화가 가파르다. 복지도 이런 변화에 대응할 필요가 있는데, 아직은 뭘 어떻게 바꿔야 할지 명확하지 않다. 가령 노동시장에선 사회보장 사각지대에 있는 플랫폼 노동자가 늘어나고 있는데, 이들을 기존 사회보장체계에 넣어야 하는지, 아니면 전혀 새로운 체계를 만들어야 하는지 논의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 소득보장도, 돌봄체계도 마찬가지다.

Q. 결국 ‘한국형 복지체계’를 정립해가는 과정이라고 보면 될지

A. 한국의 복지제도들은 대부분 해외 사례를 참고해 만든 것이다. 압축성장 과정에서 복지정책도 짧은 기간에 압축적인 발전을 이뤘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우리가 따라갈 나라가 없다. 오히려 한국은 유례없는 저출산·고령화라는 어느 나라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가고 있다. 또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심각하고, 인구 대비 자영업자가 어느 나라보다 많다. 이젠 한국 상황에 맞는 한국형 사회복지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 결과로 저출산·고령화를 비롯한 여러 사회문제가 해결된다면, 한국의 체계는 세계의 롤모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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