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류도 나눔?”…줄줄 새는 의료용 마약 [STOP 마약류 오남용③]

입력 2024-02-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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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거·폐기 인프라 미비, 관리 부실…“처방 후 마약류 행방, 의사도 잘 몰라”

환자에게 처방된 마약성 진통제가 중고거래되고 있지만, 정부는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환자들이 복용하지 않고 남긴 마약성 진통제를 수거·폐기할 인프라는 미비한 실정이다. 인터넷상에서는 남은 마약성 의약품을 ‘나눔’ 해달라며 환자들에게 불법 거래를 종용하는 이들까지 등장했다.

20일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환우회에 따르면 최근 환자 A 씨는 인터넷 카페에서 익명의 회원에게 ‘마약을 나눠달라’는 쪽지를 받았다. 자신도 CRPS를 앓고 있으며, 사정이 있어 약이 부족하니 여분의 약을 넘겨달라는 요청이었다. 위험성을 인식한 A 씨는 환우회 측에 이 같은 불법 거래 시도를 알렸다.

CRPS는 작은 자극만으로 작열감(불에 타는 고통)과 절단통 수준의 통증을 느끼는 신경성 희귀질환이다. 국내 환자 수는 명확히 파악되지 않지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자료에 따르면 연간 발병률은 인구 10만 명당 29명으로 추정된다. 환자들은 펜타닐 패치나 ‘아이알코돈정’, ‘딜리드정’, ‘타진서방정’ 등 마약성 진통제에 의존해 통증을 조절한다.

환자가 한 번에 처방받을 수 있는 마약성 진통제는 최대 1개월 분량이다. CRPS 환자들은 대부분 ‘날을 잡고’ 병원에 가서 한 번에 많은 양의 약을 받아온다. 갑작스럽게 통증이 발생할 우려가 있어 외출과 장시간 이동이 어렵기 때문이다. 다량으로 처방받은 약이 환자의 몸에 맞지 않거나, 복용 기간이 지나버리면 집에 쌓이기 일쑤다.

펜타닐 패치와 경구투여 마약성 진통제를 투약 중인 환자 B 씨는 “CRPS 환자들은 외출이 어려워 병원에 자주 갈 수 없기 때문에 한 번에 다량의 약을 처방받는 경우가 많다”라며 “과거에는 약을 분실하거나, 갑자기 통증의 강도가 심해질 때를 대비해 정량 이외에 여분의 약을 추가로 받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남은 마약’은 관리 사각지대에 방치된 상태다. 의약품은 일반적으로 약국에서 무료로 수거해 지자체가 폐기한다. 하지만 약국이 의약품을 수거할 의무는 없으며, 사회공헌 의향이 있는 약사들이 자발적으로 수거를 지원하고 있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의약품 수거와 폐기는 각 지자체 관할이기 때문에 원칙에 따르면 집에 남은 약은 환자들이 거주지 주변 관공서에 가져다 놔야 한다”며 “환자 응대와 재고 관리 등 약국 업무로 여력이 없는 약국들은 선의로 수거 업무까지 자처하기 부담스러워 한다”라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마약류 의약품을 별도로 수거·폐기하기 위해 ‘의료용 마약류 수거·폐기 사업’을 벌였지만, 성과가 미미했다. 수거 담당 약국에는 월 12만 원 가량의 수당을 지급했는데, 참여 약국은 2022년 경기도 내 69곳, 지난해 경기도 부천시 내 88곳에 그쳤다. 해당 사업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기 위한 예산 증액도 실패했다. 올해 할당된 예산은 1억8100만 원으로 지난해와 동일하다.

환자들의 의료용 마약류 반납을 독려하기 위한 유인책도 없다. 환자는 비용을 지불하고 의약품 구매한 만큼,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약을 반납하는 행위를 ‘돈 낭비’로 인식하게 된다. 또한, 중증 통증을 앓는 환자는 비상용으로 집에 약을 남겨두기를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

수도권 모 대학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의료용 마약류를 안전히 회수하려면 환자에게 약값을 돌려줘서 자발적인 반납을 유도해야 하는데, 약국과 제약사가 협조할리 만무하다”라고 했다. 의료진들은 마약류 의약품 상당량이 환자 가정 내 방치돼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식약처는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의사들은 의료용 마약류 상당량이 환자 가정 내에 방치됐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식약처는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식약처는 물론 의사들에게도 ‘남은 마약’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서울 한 대학병원 교수는 “솔직히 의사들도 남은 약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원칙적으로는 약국에 반납하라고 안내를 하는데, 실제 약국에서 반납을 잘 받아주는지, 환불은 가능한지, 환자가 진짜로 반납을 했는지 등은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다”고 털어놨다.

최종범 아주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일부 대학병원들이 자체적으로 마약류 수거·폐기 서비스를 지원하거나, 병원 주변의 대형 약국들이 도움을 주는 경우를 제외하면 처방 이후 약이 어디로 흘러 들어가는지 관리할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식약처도 문제를 인식해 제도개선에 나선단 입장이다. 채규한 식약처 마약안전기획관은 “수거·폐기 사업은 예산이 작년과 동일하게 확보됐기 때문에 금년엔 예산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해 시범운영을 전국으로 확대해 볼 계획”이라며 “병원약사회와 협의해 복용 환자, 잔여량, 복약 선호도 등 실태를 금년 중 파악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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