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전야' 공사비 갈등…"가산 기준 명확화·건축비 현실화 서둘러야"

입력 2024-02-12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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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공사현장 전경.  (이투데이DB)
▲서울의 한 공사현장 전경. (이투데이DB)

"원자잿값이 너무 많이 올라서 기존 공사비로는 감당이 안 됩니다. 이익이 거의 안 나는 건 당연하고 사실상 손실인 곳도 적지 않아서 상당수 현장의 공사비를 조정해야 할 상황입니다."(A 대형 건설사 관계자)

전국에서 건설 공사비를 둘러싼 시공사와 조합의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2~3년간 원자잿값과 인건비 등이 치솟으면서 이를 누가 부담하느냐를 두고 갈등이 잦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건설업계에서는 공사원가가 가파르게 오른 뒤에 착공한 곳들에 대한 대대적인 공사비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공사비 분쟁이 앞으로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DL이앤씨는 청천2구역 주택재개발 정비사업 조합과 신탁사를 상대로 1645억 원 규모의 공사대금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예상하기 어려운 사유로 2020년 7월 착공 당시 예정가보다 공사비가 크게 늘어난 만큼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조합과 신탁사는 계약서에 물가변동 배제 특약이 있어 추가 공사비를 줄 수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공사와 조합의 공사비 줄다리기는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최근 신반포22차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과 공사비 협의를 하고 있다. 수주 당시 공사비는 3.3㎡당 500만 원 수준이었는데 최근 얘기되고 있는 공사비는 1300만 원 안팎이다.

현대건설은 최근 부산 진구 범천 1-1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 조합에 기존 3.3㎡당 539만9000원인 공사비를 926만 원으로 올려달라고 요청했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진주아파트는 조합과 시공사 간 공사비 의견차로 분양 일정이 지연 중이고 서울 은평구 대조1구역은 공사비 문제로 공사가 중단됐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2021년 전후로 공사를 시작한 곳들은 공사비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업계가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해 전면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며 "결국 시간이 흘러 버티기 힘든 시점이 되면 지금보다 더 많은 곳에서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분쟁이 확대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도 공사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관련 대응책을 마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 장관은 지난 주 서울 강남구 건설회관에서 열린 건설업 유관단체와의 간담회 이후 열린 브리핑에서 "기본적으로 공사비 상승이 불가피하게 발생하고 있는 현실을 인정하고 이 문제에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해법을 찾아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민간 공사의 공사비 갈등을 해소할 획기적인 방안이 나오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 발주 공공사업은 현실화가 어렵지 않을 수 있지만, 민간 계약은 정부 차원에서 강제할 수 없어서 이미 공사가 시작된 민간 현장의 문제를 해결할 뾰족한 수는 없다"며 "당사자 간 원만한 협의가 이뤄지는 게 현재로서는 최선"이라고 말했다.

건설업계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이번에는 당사자들끼리 해결해 나갈 수밖에 없다고 본다"며 "최근의 공사비 갈등은 급격한 원자잿값 인상과 인건비 상승으로 인한 특수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근본적으로는 공사원가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명확한 근거가 없기 때문이란 점에서 관련 기준 마련과 시스템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표준계약서 사용 권고 정도를 넘어 공사비 급증 등을 즉각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분명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한주택건설협회는 1·10 대책 발표 이후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정부에 표준건축비 인상과 기본형 건축비·분양가상한제 가산항목·초고층 주택 가산비용 현실화 등을 건의한 바 있다.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공사비 문제를 단순히 원자재나 인건비 등에만 한정할 게 아니라 불합리한 유통 구조, 조합 부조리까지 확대해서 봐야 중장기적으로 불필요한 갈등을 줄일 수 있는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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