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찬의 미-중 신냉전, 대결과 공존 사이] 26. 對中 ‘반도체 다자통제’ 분수령

입력 2024-02-07 19:10 수정 2024-02-12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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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단독제재…美기업만 불리
韓, 국익 기반한 전략 추구해야

지난 1월 AI칩의 절대강자인 미국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4년 만에 중국을 방문해 화제가 됐다. 춘제 연휴를 앞둔 엔비디아 중국법인 송년회에 참석한 그는 동북지역 전통의상을 입고 직원들과 함께 전통춤을 추며 진중한 행보를 보였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제재가 심화되고 있지만 중국이 엔비디아 글로벌 전체 매출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어쩌면 당연한 행보였을 것이다. 특히 중국 AI칩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한 엔비디아는 미국의 대중 제재에 지속적으로 반대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지난 3년간 대중제재 실효성에 의문

사실 대중국 제재를 두고 미국 정부와 기업 간 불협화음은 이미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엔비디아뿐만 아니라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 인텔(중국매출 25%), 퀄컴(중국매출 60% 이상) 등 반도체 기업들은 줄곧 바이든 행정부에 세계 최대의 반도체시장인 중국에 대한 접근을 정부가 차단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군사·국가안보라는 명분 아래 백악관과 공화·민주 양당 모두 중국 반도체산업에 전방위 제재의 목소리를 내고 있고, 여론 또한 반중정서가 강한 상황에서 미국 반도체 기업들도 기업실적과 이윤 관점에서만 접근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 와중에 한국 일본 등 미국과 경쟁하고 있는 반도체 기업들로 불똥이 튀며 상황이 매우 복잡해지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달 17일 미국반도체산업협회는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장비 수출통제가 한국 일본 대만 EU 등 동맹국보다 복잡하고 포괄적이어서 미국 반도체 기업만 불리하다는 입장문을 상무국 산업안보국(BIS)에 전달했다.

결국 미국기업들만 억울하게 중국제재에 동참하고 있고, 다른 국가의 경쟁 반도체기업들은 합법·비합법적인 경로를 통해 중국에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며 돈을 벌고 있으니, 그들도 미국기업처럼 대중국 수출을 전면 봉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말처럼 미국기업의 불이익을 경쟁기업들도 똑같이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글로벌 반도체장비기업인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KLA·램리서치도 각자 의견서를 내고 반도체 경쟁사들도 동등하게 중국수출통제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미 상무부와 의회도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작년 12월 한미 경제안보 콘퍼런스에서 미상무부 산업안보차관은 지금의 미국 독자 수출통제에서 다자 수출통제 체제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언급하면서 우리 반도체기업들의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향후 어떤 결정을 내릴지 예단하기 어렵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지난 3년간 대중제재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첫째, 중국의 반도체 장비 수입규모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중국 해관총서(관세청 격)에 의하면, 전공정과 후공정을 합친 반도체장비 수입액은 2018년 미중무역전쟁 이후 2020년 316억 달러→2021년 410억 달러→2022년 347억 달러→2023년 396억 달러로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2022년 10월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장비 수출통제 이후인 2023년은 오히려 전년 대비 14% 급증했다.

▲엘렌 에스테베스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차관이 지난해 12월 12일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경제안보 콘퍼런스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엘렌 에스테베스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차관이 지난해 12월 12일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경제안보 콘퍼런스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 반도체 장비 기술자립 가속

2024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네덜란드의 반도체장비 수출규제 및 미국 독자제재가 다자제재로 확산될 가능성에 대비한 중국 반도체 기업들의 대응 결과로 보인다. 극자외선(EUV) 장비 수입이 어려운 상황에서 범용 반도체장비 수입을 극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중국 최대의 파운드리 기업인 SMIC 정도의 기술력이면 시간과 비용이 걸리겠지만 범용공정 장비로 첨단 미세공정의 반도체 제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둘째, 중국 반도체 장비의 기술자립이 가속화되고 있다. 중국 반도체산업 가치사슬에서 기술자립이 가장 취약한 분야가 바로 칩 설계와 제조장비이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의하면, 작년 3분기 기준 중국이 반도체 장비산업에 투자한 금액만 110억 6000만 달러로 세계 투자액의 43%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국산화율이 떨어지는 반도체장비 경쟁력 제고를 위해 400억 달러 반도체 펀드를 조성해 전공정 반도체 장비를 집중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단시일 내 노광장비 등 첨단공정 기술자립은 어렵지만 범용공정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은 이미 정부의 자금 및 정책지원을 통해 빠르게 상승하는 추세다. KIEP 자료에 의하면, 2022년 중국의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은 35%로 전년대비 14%포인트 상승했다. 2023년 6월 기준 중국 반도체장비기업은 약 1560여 개로 그중 베이팡화창·중웨이반도체·ACM리서치 등 식각·산화 전공정 장비의 기술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결국 미국의 대중제재와 압박은 중장기적으로 중국 반도체기술자립에 촉매제가 되어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셋째, 미국의 제재를 우회한 직간접적인 중국과의 거래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백악관은 첨단반도체 장비 수출규제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반도체 장비가 여전히 중국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고 보고 있다. 화웨이 메이트 60 프로에 사용된 7나노 칩, 중국 국영연구기관이 구입한 것으로 알려진 엔비디아의 고성능 AI 반도체칩인 A100 등 미국 제재를 우회한 사례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

최근 SK하이닉스가 발표한 중국 우시공장 10나노급 4세대 D램 생산을 위한 우시-이천공장의 제작 이원화 전략도 미국에는 결코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우시공장이 EUV 장비를 도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시에서 부분 완료된 D램을 국내 이천공장으로 가져와 EUV 공정을 하고 다시 우시공장으로 보내는 방식을 통해 사업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독자통제에서 다자수출통제로의 전환은 결국 시간문제로 보인다.

對中 제재 우회한 간접거래 늘어

동맹국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함과 동시에 11월 미 대선을 준비해야 하는 바이든 입장에서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만약 범용반도체 장비의 대중국 수출통제를 동맹 및 우방국에 강요할 경우 반발이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바이든의 대중 제재는 구멍이 많다고 외치고 있는 트럼프가 만약 재선될 경우 상황은 더욱 험난할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 반도체장비 수출액 중 중국이 50% 이상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경제는 현실이다. 미중 양국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우리 국익을 위한 명확한 입장과 전략이 필요한 시기이다.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중국경영연구소장

박승찬

중국 칭화대에서 박사를 취득하고, 대한민국 주중국 대사관에서 경제통상전문관을 지냈다. 미국 듀크대(2010년) 및 미주리 주립대학(2023년) 방문학자로 미중기술패권을 연구했다. 현재 사단법인 한중연합회 회장 및 산하 중국경영연구소 소장과 용인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더차이나>, <딥차이나>, <미중패권전쟁에 맞서는 대한민국 미래지도, 국익의 길>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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