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아시안컵은 ‘역대 최고 전력’으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손흥민(토트넘)부터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등 유럽파 선수들이 역대급으로 많이 포진해 있었고, 아시안컵 전까지 6경기에서 20골을 넣고 무실점 연승을 이어가는 등 내부 분위기도 좋은 상황이었죠.
그런데 막상 뚜껑이 열린 클린스만호에 축구팬들은 당황했습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차이가 확연한 말레이시아, 요르단과의 경기에서 겨우 동점을 기록하는가 하면, 패스 미스로 골을 헌납하고 결정적인 슈팅 찬스를 놓치는 등 미흡한 경기력을 보여 팬들의 탄식을 자아낸 겁니다.
졸전을 거듭한 데에는 뚜렷한 전술과 전략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이어졌습니다. 클린스만호가 4강까지 오를 수 있었던 건 선수들 개인 기량에 의존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왔죠. 요르단과의 4강전에서 2-0 완패를 당한 한국은 64년 만의 왕좌 탈환에도 실패했습니다.
이에 클린스만 감독을 내쳐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지고 있는 건데요. “참을 만큼 참았다”는 축구 팬들의 원성이 나오는 건 물론,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국민청원까지 등장하는 등 여론이 들끓고 있습니다.
사실 클린스만 감독에 대한 비판 여론은 취임 전부터 있었습니다. 지난해 3월 한국 축구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클린스만 감독은 과거 독일과 미국 대표팀 사령탑 시절에도 잦은 외유, 재택근무로 논란을 빚은 바 있죠.
한국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그는 “상주하겠다”며 팬들을 안심시켰지만, 우려는 현실이 됐습니다. 대표팀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에 활발히 나서는가 하면,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조 추첨식에 참가하는 등 ‘한국 감독’이라고 하기엔 의문스러운 행보를 보인 겁니다. 또 A매치가 열린 3, 6월을 제외하곤 가족이 있는 미국에서 생활했죠.
클린스만 감독은 ‘결과로 증명하겠다’고 우려를 일축했습니다. 아시안컵 성공을 내세우면서, 이후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었죠. 그러나 클린스만호는 아시안컵에서 졸전을 거듭하며 아시아의 맹주에서 종이호랑이로 전락했습니다. 요르단과의 4강전에선 유효 슈팅을 단 한 번도 기록하지 못하면서 충격을 안겼죠.
아시안컵의 주된 탈락 요인으로는 클린스만 감독의 무색무취 전술이 꼽힙니다. 세계적인 선수들을 보유했으나, 이들의 개인 능력에만 의존하는 전술을 택해 세밀함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고, 적절한 로테이션이나 선수 교체 없이 특정 선수만 오랜 시간 기용해 체력 리스크를 안겼다는 점도 문제로 거론되죠.
아시안컵 결과를 통해 말하겠다던 클린스만 감독의 태도는 당당(?)했습니다. 조별리그부터 졸전 후에도 웃음을 유지하던 클린스만 감독은 요르단전 이후 기자회견에서 “한국으로 돌아가 이번 대회를 분석하겠다. 대한축구협회와 어떤 게 좋았고, 좋지 않았는지 논의하려 한다”며 “앞으로 2년 반 동안 북중미 월드컵을 목표로 해야 한다. 더 발전해야 한다”고 사퇴 뜻이 없음을 강조했는데요. 귀국 현장에서도 미소를 띤 채 ‘사퇴 의사가 있나, 대표팀을 계속 이끌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라는 기자들 질문에 “아시안컵 준결승까지 진출했는데 실패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전했습니다.
설상가상 “팀이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다”며 “국가대표팀 감독은 출장을 비롯한 여러 업무를 프로팀 감독과는 다른 방식으로 해야 한다. 지적이 나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저의 일하는 방식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는 등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모습으로 황당함까지 자아냈죠.
여기에 클린스만 감독은 한국으로 돌아온 지 이틀 만에 미국으로 출국하면서 할 말을 잃게 했습니다. 그는 8일 아시안컵 일정을 마치고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취재진에게 “다음 주쯤 휴식을 위해 미국 자택으로 돌아갈 계획”이라며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유럽으로 넘어가 해외파 선수들의 상태를 점검할 계획”이라고 설명한 바 있는데요. 예고보다 일찍 한국을 뜬 겁니다.
일부 축구 팬들은 “역대급 감독”이라며 혀를 내두르고 있습니다. 기대에 비해 지도력이 따라주지 않은 감독들은 물론 있었지만, 팀에 대한 ‘진심’만큼은 보였습니다. 그러나 클린스만 감독은 마치 ‘위약금 물고 자르려면 잘라라’, ‘배 째라’ 식 불성실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클린스만 감독의 계약은 2026 북중미 월드컵이 끝나는 2026년 7월까집니다. 자진 사퇴한다면 위약금은 발생하지 않지만, 그를 해임하려면 잔여연봉 지급 조항에 따라 70억 원 안팎의 위약금을 물어줘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클린스만 감독의 연봉은 29억 원가량으로 추정되죠.
비판은 축구협회로도 이어졌습니다. 사실 클린스만 감독 선임 과정이 전력강화위원회 차원의 심도 있는 논의나 검증 등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전력강화위원회는 대표팀 감독의 선임이나 해임, 재계약 관련 업무 등에 대해 조언과 자문을 하는 기구인데요. 여기 속한 위원들도 클린스만 감독 선임 공식 발표 30분을 남기고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는 전언이었죠.
클린스만 감독 선임의 중심에는 정몽규 회장이 있었습니다. 클린스만 감독은 부임 기자회견에서도 정 회장과의 오랜 친분을 과시한 바 있죠.
외신도 클린스만 감독의 선임 과정을 지적했습니다. 영국 매체 디 애슬레틱의 토트넘 홋스퍼 전담 기자 팀 스피어스는 12일 ‘클린스만과 한국의 끔찍했던 아시안컵 : 전술, 여정, 그리고 너무 많았던 미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은 대회에서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 중 하나였지만, 준결승 탈락과 함께 재앙으로 끝이 났다”며 “그 여파는 대회 후 한국에서도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는데요. 그는 클린스만 감독 체제 이후 1년 동안 한국이 전혀 발전하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그를 고용한 정 회장에 대한 압박이 커지고 있다”며 “클린스만 감독과 정 회장은 요르단전 패배 이후 만났지만, 그들은 계속 함께 하길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는데요. 이어 “정 회장은 위상을 높이기 위해 축구계 거물 영입에만 열심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한축구협회도 파울루 벤투 감독의 후임자를 물색할 때부터 적합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고 꼬집었죠.
여기에 정 회장은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 여부를 논의하는 첫 임원회의에 불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한축구협회는 12일 밤 부회장 등 임원진들에게 “5차 임원회의는 취소됐고, 동일한 시간에 상근부회장 주재로 아시안컵 관련 임원진 회의를 실시할 예정”이라는 내용의 긴급 문자메시지를 보냈는데요. 정 회장이 올해 들어 이미 4번 열렸던 임원회의에 불참한 건 이번 5차 회의가 처음입니다. 정 회장의 불참 이유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여론이 들끓고 있지만, 클린스만 감독을 마냥 쉽게 내칠 순 없습니다. 우선 축구협회 재정이 좋지 않다는 게 우려되는데요. 인상된 천안축구센터 건설비를 충당하기 위해 추가 대출을 받은 금액이 300억 원에 달하는 상황입니다. 만약 클린스만 감독을 경질한다면 새로운 감독을 선임하는 비용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대표팀이 다음 달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 일정을 앞두고 있다는 점도 부담 요소입니다. 감독이 부재인 상태에서 2026 북중미 월드컵 예선을 치를 순 없기 때문에 경질 여부를 판단하고 새 사령탑 후보군을 추려 접촉해야 하는데요.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순 없기에 빠른 속도로, 그러나 반드시 유능한 인사를 선임해야만 하죠.
거액의 위약금, 클린스만 감독과의 친분 등 부담 요소에 정 회장의 고민은 깊어질 것으로 보이는데요. 13일 서민민생대책위원회가 서울경찰청에 정 회장을 강요, 업무방해,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고발했다고 밝히는 등 국민 원성은 높아져만 가고 있어 결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축구협회는 이번 주에 전력강화회의를 열고 최종적인 결정 사항을 조속히 발표하겠다는 방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