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피하는 타로점?…미신에 울고 웃는 의뢰인들 [서초동MSG]

입력 2024-02-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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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전국 법원에서 다루는 소송사건은 600만 건이 넘습니다. 기상천외하고 경악할 사건부터 때론 안타깝고 감동적인 사연까지. '서초동MSG'에서는 소소하면서도 말랑한, 그러면서도 다소 충격적이고 황당한 사건의 뒷이야기를 이보라 변호사(정오의 법률사무소)의 자문을 받아 전해드립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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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님은 무슨 띠인가요? 생년월일에 태어난 시각은 어떻게 되나요?”

소송은 보통의 의뢰인에게 인생에서 한 번 겪을까 말까 하는 중대사다. 그래서일까 소송을 앞두고 심리적으로 불안한 의뢰인들은 무속신앙이나 미신에 의존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들은 때로 변호사에게 난감한 요구를 하는 경우도 있다.

한 의뢰인이 변호사와 상담이 마무리될 때 쯤 머쓱한 표정으로 “저에게 관재(관청에서 비롯되는 재앙)가 들었다더라”라며 말을 조심스레 꺼냈다. 그러면서 변호사와 사건을 담당하는 검사, 판사의 생년월일까지 물었다.

자신의 선고 기일 날짜가 불길하다며 재판 일정까지 바꾸려는 의뢰인도 있다. 물론 재판관은 그런 이유로 인한 재판 기일 연기‧변경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실형 예상되던 의뢰인, 집유 확정된 이유?

변호사와 사사건건 대립하던 의뢰인이 있었다. 변호사 입에서 “사임하겠다”, “다른 변호사를 추천해주겠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두 사람은 부딪혔지만 의뢰인은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고 한사코 “변호사님과 함께 하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얼마 뒤 이 의뢰인은 일부 무죄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변호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당시 이 의뢰인은 집행유예기간이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번 재판에서 또다시 집행유예가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례적으로 검찰의 항소도 없이 집행유예가 확정됐다.

시간이 흐른 뒤 이 의뢰인이 소회를 털어 놓았다. 감옥에 들어가게 될 까봐 전전긍긍하며 변호사와 상담하던 시절, 우연히 타로점 카페를 방문했다고 한다. 그곳에서 타로술사로부터 “지금의 변호사와 함께 한다면 구속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덕분에 의뢰인은 긴 재판 과정에서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었다.

이후 이 의뢰인은 타로술사의 말을 따라 세상과 단절하던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새로운 직업을 얻어 활기찬 일상을 가꾸고 있다.

꿈 하나에 희비 엇갈리는 수용자들

미신은 구치소‧교도소에서도 영향력이 상당하다.

구속된 미결수가 입는 수의 중 카키색은 기본 지급되고 하늘색은 구매가 가능하다. 일부 수용자들 사이에는 하늘색 수의를 입으면 집행유예로 석방될 확률이 높다는 미신이 있다. 특히 이미 출소한 이들 또는 출소가 예정된 수용자의 수의는 ‘밖으로 나가게 하는 상서로운 기운’이 깃들어 있다며 쟁탈전이 벌어지곤 한다.

출소한 이들은 곧바로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 마치 장례식장에 다녀온 것처럼 소금을 뿌리거나 호텔 등 숙박업소에 며칠 묵고 새로운 옷으로 전부 갈아입고 그제야 집으로 돌아간다.

미결수들이 구금된 구치소 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책은 만화책, 그리고 ‘꿈‧해몽 백과사전’이다. 자신들의 꿈을 해석하며 출소 시점을 예측하곤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한 피고인은 자신이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출소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선고기일 전날 구치소 옆방에서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발생하며 선고기일이 한없이 미뤄져 출소는 먼 미래의 일이 됐다. 마침 그가 그날 꾼 꿈은 ‘검은색 옷을 입은 거구가 문을 막고 있는 꿈’이었다.

이밖에도 구치소에서 출소한 피고인들은 ‘여드름을 시원하게 짜는 꿈’, ‘팬티를 갈아입는 꿈’을 꿨다고 입을 모았다.

꿈과 해몽은 인신이 구속되는 형사 사건 뿐 아니라 온갖 다양한 사건에도 등장한다. 아내로부터 뜻밖의 이혼소장을 받은 남편이 어느 날 꿈을 꿨다. 꿈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나와서 자신의 자동차를 가리켰고, 남편은 예사롭지 않은 꿈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서둘러 자동차의 블랙박스 기록을 뒤졌는데 그곳에서 자신의 아내와 내연남의 불륜 흔적이 담긴 영상이 발견됐다. 자동 삭제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증거였다.

맹신했다간 큰 코 다친다

미신이나 꿈에 기댈 수는 있지만 맹신해선 안된다.

한 의뢰인은 미성년자 자녀에 대한 신년운세에서 ‘관재수도 큰일도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러나 점괘와 달리 자녀는 학교 폭력을 저질러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까지 회부됐다.

그럼에도 이 의뢰인은 점괘를 믿으며 무혐의를 확신했고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했다. 뻔뻔한 모습에 피해자 측은 분노했고 결국 사건은 형사 사건으로까지 번지게 됐다.

재판을 앞두고 방문한 여러 점집에서 ‘절대 구속되지 않는다’는 말만 듣고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한 피고인이 있었다. 이 사건에서 판사는 “현행범으로 체포됐다가 석방된 피의자는 수사를 받는 동안에도 같은 범행을 저지르는 등 법 경시 태도를 보였다”며 그를 구속시켰다.

무속인‧역술인들, 피소되는 일도 잦아

실제로 무속인이나 역술인들은 의뢰인들을 현혹시켜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위험한 선택을 하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의뢰인들도 힘들 때는 그들에게 의지하면서도 상황이 불리해지면 억하심정으로 뒤늦게 ‘사기방조’ 혐의 소송 제기도 불사한다.

이보라 변호사(정오의 법률사무소)는 “중요한 선고를 앞둔 의뢰인들이 심리적으로 힘들어 점괘에 기대 위안을 얻고 싶을 수 있다”면서도 “점괘나 미신을 맹신하며 결과를 만들어가는 것은 사람이다. 확실하지 않은 이야기로 잘못된 판단을 내리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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