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한 전공의들이 국제노동기구(ILO)에 긴급 개입을 요청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과 25명의 사직 전공의들은 법률대리인을 통해 개인 명의로 13일 ILO에 긴급개입 요청 서한을 발송했다고 14일 밝혔다.
서한에는 정부가 전공의들에게 업무 복귀를 요구하는 것이 ‘강제노동’에 해당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전공의들은 “ILO의 개입을 통해 대한민국 정부에 업무 개시 명령 및 면허 정지 조치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요청했다.
전공의들은 정부의 업무개시 명령에 대해 “전공의들로 하여금 처벌 위협하에 강요받은 노동을 하게 함으로써 전공의들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며, ILO 협약에도 반하는 위법행위”라고 지적했다.
그간 한국 법원이 전공의의 근로자성을 인정해왔다며 ILO 개입의 정당성을 피력했다.
전공의들은 “법원은 전공의에 대하여 ‘피교육자의 지위와 함께 근로자의 지위를 아울러 가지고 있다’고 보아 전공의를 근로자로 인정해 왔다”라며 판례를 제시했다. 또 일본과 미국에서도 전공의들이 노동관계법상 보호되는 근로자로 인정받고 있다고 부연했다.
전공의들의 사직은 열악한 근무 환경과 과로에서 기인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전공의들은 “2022년 전공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공의의 1주 평균 근로시간은 77.7시간이고, 4주 평균 주 80시간을 초과하여 근무했고 응답한 비율은 52.0%로, 전공의특별법에 따른 전공의 근로시간이 지켜지지 않는 수련병원이 다수 존재한다”라며 “1년 차 전공의의 4주 평균 주당 근무시간의 중윗값은 약 90시간에 달할 정도로 장시간 근무로 고통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관련 법령의 개정 등 장시간 근로 및 전공의들이 당하는 부당한 처우에 대한 개선방안을 모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진지한 대화에 이르지 않았다”며 “상황을 견디다 못한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자, 전공의들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고 이에 불응할 경우 면허정지처분, 고발 및 해외 출국 금지 조치를 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은 전공의들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한국의 근로기준법 제7조에 명시된 강제근로의 금지 및 ILO 핵심협약 제29호에도 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공의들이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이유도 언급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의과대학 정원을 확대하는 것이 전공의들의 업무 환경을 악화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2020년 당시 대한의사협회와 정부는 ‘의대정원 통보 등 일방적 정책 추진을 강행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긴 합의문을 작성한 바 있다.
전공의들은 “교육여건에 대한 고려 없이 일방적으로 증원하는 것은 오히려 전공의들에 대한 처우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라며 “저임금 노동자를 더욱 많이 양산하고 사용자로 하여금 다양한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선택지를 갖게 함으로써, 더욱 낮은 근로조건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을 초래하기 때문”이라고 썼다.
한편 한국은 2021년 2월 국회에서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내용의 ILO 협약 제29호에 대한 비준 동의안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현재 국내에서 해당 협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
ILO의 긴급개입은 특정 국가에서 발생한 심각한 노동기준 위반에 대응하기 위한 제도다. 노동기준 위반에 대한 신고나 항의가 접수되면 이에 대해 ILO가 조사를 실시하며, 조사 결과에 따라 해당 국가의 정부에 개선을 촉구하는 공문을 전달한다.